모든 게시물
#책(31) #수필(17) #인스타그램(13) #CS(10) #여행(8) #웹개발(8) #프랑스(8) #교환학생(7) #제주도(4) #BuyBus(3) #그림(3) #미술관(3) #아카이브(3) #요리(3) #월간(3) #창업(3) #해커톤(3) #넷플릭스(2) #버킷리스트(2) #상하이(2) #영화(2) #전시(2) #중국(2) #펜화(2) #AI(1) #CG(1) #드라마(1) #시(1) #운동(1)
저녁에 세종에 볼일이 있어 잠깐 들르고 왔다. 맨날 책상 앞에 앉아 학위논문 마무리 작업에 치이던 중 오랜만에 떠난 나들이라 정신이 환기되었는지, 오가는 차 안에서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라 적어본다. 제목은 내가 태어난 지 오늘로 27년 2개월 7일이 되었다는 뜻이다. 의도한 게 아닌데 숫자도 참 예쁘다. 생각을 꼭 오늘 중에 글로 옮기라는 뜻인가 보다. 내 인생의 이 시점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적어 보고자 한다. 이전에도 이미 나이를 먹어가며 새롭게 느낀 점들을 글로 적은 바 있다. 그것은 내 입장, 즉 내가 얼마나 부딪히고 읽고 생각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다루었다. 하지만 본 글은 좀 다르다. 오늘은 내가 포착한, 내 또래가 지나고 있는, 지금 이 시기에 이 세대의 컨센서스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개개인의 편차를 서로 상쇄한 "대푯값"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내 나이 자체가 아주 적절한 제목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간간이 이렇게 인생 버전 업데이트 이력을 쓰는 것도 재밌겠다. 세대의 컨센서스라고 했지만 나의 관측가능한 우주는 몹시 작으므로 실제 ground-truth와는 아주 다를 수 있음을 미리 일러둔다. 어쩌면 이 글이 내가 경험하는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를 보여주는 방증이 될 수도 있다. v27.2.7 업데이트 많은 또래가 스스로 가구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가족과 활동하는 지역이 같고, 분가하기에는 도시의 혹독한 집값으로 그 비용이 터무니없이 높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가끔 서로의 집에 놀러 가기도 한다. 이제 마감 시간이 늦는 카페/술집을 찾으며 전전긍긍할 일이 많이 줄었다. 몇은 차가 있거나 그렇지 않아도 가끔은 택시를 탈 재력이 있어, 막차 시간에 대한 고민도 덜었다. 결혼한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래도 여자가 남자보다는 빨라서 슬슬 사례가 보이는데, 그마저도 많지 않다. 그러나 머지않아 (= 앞으로 1-2년 안에도) 크게 증가할 듯싶다. 얼마 전에 만난 나보다 불과 몇 살 많은 사람이, 주변 친구 중 절반은 결혼한 것 같다고 말해 사실 좀 놀랐다. 여자도 아닌 남자였는데. 아무리 결혼 연령이 늦어졌다고 해도 파도는 오는구나. 결혼이 그러하니 출산과 육아의 파도도 곧 뒤따라올 것이다. 맏이가 아니라면 그 파도에 이미 탑승한 손윗 형제를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조용한 장소를 선호하는 나로서 친구들과 집에 모여 늦저녁까지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내 인생 중 독립성의 최정점에 서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나 포함) 결혼할 생각이 있다면 이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길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독립을 가능케 하는 재력 수준은 갖추었지만 동시에 아직 산하의 가족은 없어 찾아오는 잠깐의 황금기일 뿐이다. 가정을 꾸리려면 자신의 세계가 배우자와 자식의 그것과 병합되며 수반하는, 그 황금기를 반납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 개인별 적성의 차이는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초까지만 해도 '이 친구는 여기에 두각을 나타내는구나.', 정도의 생각이 들게 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위에 어느새 무시할 수 없는 시간과 노력이 쌓여, 이제는 각자가 활동하는 분야에 따라 아예 다른 종 species 으로 분화해 버렸다. 그만큼 삶의 양상이 달라졌고, 다른 종의 사람과 교류하려면 특별한 노력을 들여야 한다. 예체능 분야에서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커리어 상으로 시작보다 끝에 가까운 경우도 꽤 많다. 많은 이들의 전성기가 시작되거나 이미 진행 중이고 바둑 기사나 프로게이머와 같은 특정 분야들은 이미 전성기를 지났다. 나와 내 주변 많은 경우를 포함한 학계, 전문직종, 창업씬 등에 속한 사람들의 번영은 예체능 사람들의 그것보다 늦다. 그중 확정적인 성공을 거둔 이들은 아직 내 주변에는 없다시피 하며 일반 사회로 눈을 돌려도 그 수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러나 앞으로 그럴 확률이 높은 이들은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내 안목이 얼마나 쓸만했는지 5년, 10년 뒤에 따져볼 일이 아주 기대된다. 재계, 정계 사람들의 시기는 앞선 항목의 그것보다도 늦어, 일반 사회에서도 입문한 또래조차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삶의 막바지도 이제 막연히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부모는 이미 은퇴를 했거나 곧 앞두고 있고, 우리는 이제 그들에게 보살핌을 받기보다는 주어야 한다는 것이 하루하루 더 명확해진다. 막 세상을 떠났다는 유명인들의 이름 중 많은 수가 이미 알던 이름이다.
3달 전 · #수필
--> 요즘 연구에 필요한 코드베이스 수정에 Codex의 도움을 받다가 심심찮게 사용량 제한에 걸리게 되는데, 그 제한 방식이 재미있다: 사용량은 다섯 시간과 일주일, 이렇게 두 레벨에서 각각 계량된다 (Claude Code도 비슷한 시스템을 가진다고 알고 있다). 사용량 초과 여부 판단을 위한 대상 구간은 간단히는 다음의 두 가지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5h 레벨을 예로 들면) 오늘 9시-14시, 14시-19시, ⋯ 처럼 정해진 구간 (fixed window) 혹은 사용 요청이 들어오기 직전 5h 동안의 구간 (moving window) Codex는 1번과 2번의 사이쯤에 있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용자가 한동안 사용을 멈추었다 재개하면, 재개하는 시각부터 5h window를 시작하고 다섯 시간이 지나면 window를 리셋하는 식이다. 사용자가 Codex를 24시간 내내 사용한다면 이 방식은 1번과 비슷하게 작동할테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괴상한 산정 방식 때문에, Codex를 (잘) 더 쓰면 실질적 사용량을 오히려 늘릴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자: 누군가 출근해서 Codex가 필요없는 일을 하다가 오전 11시에 하나의 Codex 작업으로 5h 할당량 100%를 소진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이 사람은 추가 크레딧을 구매하지 않는 이상 오후 4시까지 Codex를 더 쓸 수가 없다. 하지만 아침 9시에 출근하자마자 Codex로 간단한 작업을 수행했다면, 11시에 100%에 가까운 작업을 또 수행하더라도 오후 2시면 사용량이 리셋되어 할당량 100%를 한번 더 쓸 수 있다. 이 점을 잘 활용하면 사용량을 극한까지 늘릴 수 있다. 핵심은 cron job으로 Codex에게 새벽부터 특정 주기로 특정 작업을 수행하도록 스케쥴링하여, 내가 가장 집중적으로 작업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대 중간에 사용량이 리셋되도록 자동으로 맞추어놓는 것이다. 내게는 10시, 15시, 20시가 적당하겠다. 작업은 가벼울수록 좋다. 난 간단히 "Codex 야호-!"만을 외치도록 해놓았다: 이러면 5h 할당량의 1%도 소모하지 않으면서 리셋 시각을 매일 5n시로 고정해놓을 수 있다. 결론: Codex 야호-! *** 추가 #1 인스타에 스토리로 올린 이 글을 보고 누가 제보해주어서 알게 된 건데, 이미 반년도 더 전에 누가 나와 정확히 똑같은 생각을 하고 GitHub Gist에 cron job script와 그 개발 동기를 작성해 올려놓은 문서 가 있다. 여기엔 Claude Code를 위한 스케쥴링도 포함되어있으니 궁금한 사람은 참고할 것. 추가 #2 본문의 cron job은 개념 전달만을 위해 baseline을 적은 것이고, 부가적으로 몇 가지 기능을 더 붙일 수 있다. 아래는 실제 내 컴퓨터에 입력한 작업이며: ~/bin/codex-log-test.sh #!/bin/bash LOGFILE="$HOME/logs/codex.log" { echo echo "==================================================" date '+%Y-%m-%d %H:%M:%S' echo "==================================================" codex exec \ '"Codex 야호-!"라고 출력해.' \ --config model_reasoning_effort="low" \ --skip-git-repo-check } >> "$LOGFILE" 2>&1 terminal chmod +x /Users/gunheeyi/bin/codex-log-test.sh $ crontab -l 56 4 * * * /Users/gunheeyi/bin/codex-log-test.sh 58 9 * * * /Users/gunheeyi/bin/codex-log-test.sh 0 15 * * * /Users/gunheeyi/bin/codex-log-test.sh 2 20 * * * /Users/gunheeyi/bin/codex-log-test.sh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추가되었다: exec mode & --skip-git-repo-check flag: 크론잡으로서 문제없이 실행되려면 이 모드/옵션을 명시해서 non-interactive mode로 실행하고 디렉토리 확인 절차를 건너뛰도록 해야 함 >> "$LOGFILE" 2>&1 : cron이 잘 실행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실행 중 출력 사항을 log 파일에 저장 echo ~ : 로그에 출력물과 함께 현재 일시를 기록 --config model_reasoning_effort : 토큰 사용량을 최소화하도록 추론 노력을 최저로 설정 직전 작업보다 이번이 더 빠르게 실행되면 이번 작업이 직전 window 내에서 실행, window가 갱신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정확히 5시간이 아닌 5시간 2분 간격으로 실행하도록 설정 (시험해보지는 않음) 더불어 사소한 주의사항: cron은 로컬 컴퓨터 설정이므로 실행할 컴퓨터가 꺼져있는 동안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언제나 정상적으로 실행되기를 원한다면 컴퓨터를 항상 켜두거나, 이상적으로는 서버가 있다면 그곳에 스케쥴링해두는 것이 좋다. 사용량은 기기별로 계량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계정에 속한 세션끼리 공유되므로, 서버에서 window를 열어도 같은 window가 다른 컴퓨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 아직 엄격히 검증해보지는 않음.
3달 전 · #AI

읽는 중.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과 함께 대출, 레전드 뒷북 독서 시리즈 시작. 알았어야 할 것들이 뭐이리 많아
6달 전 · #책

작년을 시작하는 책이 한강의 「소년이 온다」 였다면, 2026년을 연 것은 이 책. 좋은 선택이었다.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게 맞는건지 이십몇년을 살고 난 요즘에야 막 깨닫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깨닫는 것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팔십몇년을 먼저 살아온 당신의 글로부터 확인합니다. 고맙습니다.
9달 전 · #책

얼마 전에 아버지 생신을 맞아 부모님께 핸드폰을 선물해 드렸다. 선물이란 게 모름지기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받으면 좋아할 물건이어야 하는 건데, 부모님께 새 핸드폰이 꼭 필요한지는 이미 좀 되었다. 내가 보기에는 두 분의 핸드폰 모두 예전부터 오늘내일하는 중이었지만 당신들께서는 사용에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해오셨기에… 아무튼 선물을 받고 아주 좋아하시기는 했다. 아버지 생신이 연말이라 크리스마스 때와 시기가 비슷한데, 생각해 보니 내가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지도 이번 해로 딱 20년이 되었다. 2005년 크리스마스에 난 산타할아버지께 전자사전을 선물로 받았다. 내가 소유하게 된 첫 전자제품이었다. 주사율이 3Hz 될까 말까 한 흑백 반사형 LCD에 변변한 기능이라곤 사전과 메모, 달력, 연락처 정도밖에 없었지만, 그걸 받았을 때 느낀 설렘은 아마 첫 맥북이 생겼을 때보다도 컸을 거다. 며칠 동안 메뉴를 다 뒤져가며 메모에다가 일기도 써보고, 친구들 집 전화번호도 저장해두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피처폰을 썼기 때문에 개인 컴퓨터가 생긴 고등학교 재학 전까지 최소 10년은 이 사전을 옆에 끼고 살았다. 고등학생 때도 면학실에 두고 썼던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단어를 이 사전으로 배웠다. 지난주에 영어로 한 세미나 에서 사용한 단어 중에서도 이걸로 배운 것의 지분이 아마 반 이상은 될 거다. 지금 보니 정말 작고 귀여운 전자사전. 내 손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상·하판을 다 한 번씩 갈았다. 그야말로 테세우스의 전자사전 그 자체 그해 크리스마스는 배경도 독특했다. 삼촌네 집들이가 딱 그때로 잡힌지라 거기서 선물을 받았다. 어린 나는 ‘산타할아버지가 삼촌 집을 어떻게 알았지??'하고 신기해할 따름이었다. 나중에 부모님께 산타할아버지께 듣기로는 그때 친척들과 일정을 조율하며 장소가 막 바뀌는 와중에 선물을 어떻게 수송해야 할지를 함께 계획하느라 고생을 좀 하셨다고 한다. 재밌는 건, 올해 나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위험을 부담하며 핸드폰을 바로 본가로 배송시킬지, 아니면 내 집으로 시키고 가지고 올라갈지 동생과 의논하면서 아 부모님께서도 2005년에 비슷한 대화를 나누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딱 20년 만에 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물론 부모님께 의지하는 구석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래도 이제 적어도 가끔은 부모님께 선물을 드릴 수 있을 만큼 내가 컸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또 공교롭게도 전자사전과 스마트폰은 각각 당시를 대표하는 전자제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그 기능과 성능의 차이로부터 정말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을 느꼈다. 풀고 싶은 즐거운 기억이 하나 더 있다. 2003년 연말에 우리 가족은 방콕으로 여행을 갔었다. 자연스레 크리스마스 선물도 여행 중에 받았다. 그해 선물은 요술칠판으로, 옆에 레버를 내리면 탄성으로 레버가 다시 느리게 올라가며 한 번에 캔버스 전체를 지워주는, 꽤 고급(?) 요술칠판이었다. 거기에 원하는 그림도 그리고, 무언가를 배울 때 적어보기도 하면서 한참을 잘 썼다. 그런데 선물을 받던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선물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온 편지였다. 편지가 태국어로 한바닥 쓰여 있던 것이다! 외국 국적의 산타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positive). 그리고 이런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 다 있느냐면서 부모님께 아마 자랑했을 거다. 겨우 다섯 살 때 일이 지금도 드문드문 기억나는 걸 보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 편지는 사실 부모님께서 영문으로 쓰고 호텔 직원에게 부탁해서 태국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그날 그 편지와 선물을 받은 사건은 지금도 내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기억 중 하나다. 나도 나중에 아들딸들에게 이런, 아니면 더 기발한 선물을 해야지. 선물의 재미있는 점은, 정성을 들이는 건 선물을 줄 때지만 나중에 기억에 남는 건 오히려 받은 선물들이라는 거다. 내가 선물하지 않고 살아온 것도 아닌데, 떠오르는 건 모두 받은 것들이다. 그리고 주는 입장에서는 내가 준비한 걸 마음에 들어 할까 노심초사하지만, 받을 때는 그게 뭐든 상관없다. 그냥 날 생각하며 무언가를 준비해 주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고맙다. 얼마 전에는 인형을 하나 선물 받았는데, 전에 인형에 아무 관심이 없던 나였음에도 그게 무척 마음에 들어 집 소파 등받이 위에다가 잘 올려두었다. 잘 모르던 것을 선물 받으면 그게 새로운 발견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2012년 생일에 나한테 펜텔 샤프 선물해 준 초등학교 친구들아, 나 그거 아직도 쓰고 있는 거 아니? 마음에 쏙 들어서 중간에 몇 번 고장도 났는데 일부러 같은 걸로 두세 번 더 사서 쓰고 있어. 얼마 전에 양자컴퓨팅 과목 시험도 그걸로 봤다. 요즘은 카톡에서 보고 챙기기가 쉬워져서 그런가, 생일과 같이 정형화된 때보다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받는 선물이 주는 울림이 더 커진 것 같다. 얼마 전에 받은 인형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그건 연구실 선배가 해외 학회에 가서 사 온 거였다. 나도 함께 가려고 초록 제출해서 accept 받고 논문까지 작성 완료, 이제 출국만 앞둔 학회였지만, 어이없는 사정이 생겨서 갈 수가 없게 됐다. 입학 후 따낸 첫 해외 학회를 눈앞에 두고 못 간 나를 떠올리고 인형을 사다 준 건데, 그 성의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시드니에서 열린 항공우주학회라 우주복 입은 캥거루 인형이야 자기 인생 하나 꾸려나가기에도 바쁜 세상에, 생일도 아닌 사람을 챙길 줄 아는 게 다 센스고 노력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음을 떠올리니 새삼 마음이 따뜻해지는 연말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도록 더 노력해야지.
9달 전 · #수필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 말을 요새 자주 떠올린다. 이름을 남기고 싶다. 나를 개인적으로 알던 사람들에게는 덕성이 훌륭했던 사람으로, 모르던 이들에게는 세상을 이롭게 한 공학자·기업가·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다. 동시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는다. 이 땅을 거쳐간 천몇억의 인간 중 당신이 이름을 기억하는 자는 몇이나 되는가. 얼마전, 문득 요절한 가수의 노래에 빠져 며칠 동안 그것만 들은 일이 있었다. 그 가수는 결혼을 한 적이 없고 자녀도 없었다. 생물학적으로 보았을 때 어떤 개체의 가장 큰 성공은 자신의 유전자 혹은 그것과 유사한 것을 세상에 아주 많이 남기는 것이다. 반대로 자손을 남기지 못한 개체는 실패한 개체다. 생물학적으로 보았을 때, 그 가수는 실패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그가 세상을 뜬지 꽤 된 이 시점에도 그의 노래를 듣는다. 그의 창작물은 그가 죽은 후에도 남아 수많은 이들에게 소비된다. 우리는 그의 노래로 위로받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름을 남긴다"는 표현으로 압축되는, 나와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이들이 세상을 더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 그것 또한 고차원적인 관점에서는 나의 유전자를 남기는 방법 중 하나다. 직접 생식하는 일만큼 정밀한 복사는 아니어도, 훨씬 더 많은 개체로서, 영원히 남길 수 있다. 이제 생식은 유전자를 남기는 많은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 현대 국가들이 변모하는 모습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국가의 최종적인 형태는 같은 인종이 아닌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합이다. 인종으로 그어지던 국가 간의 경계는 세계화로 인해 희미해지고, 이제 사상과 이념이 사람들을 한데 묶는다. In God We Trust, 미국은 그 독특한 배경으로 인해 이 궁극의 형태에 가장 먼저 다가선 나라가 되었다. 가치관을 통한 결속은 때로는 피로 쓰여진 그것보다 더 강력하다. 사람들이 인종은 다르지만 같은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누군가와 편을 먹고, 같은 인종의 사람과 맞서고, 심지어 총을 겨누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다. 유전자의 보존을 제1법칙으로 하는 진화생물학만으로는 이러한 행위를 설명하기 어렵다. 아니면 유전학 연구가 언젠가 극에 달하면, 염기서열에 담기기에는 너무나도 추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인간의 가치체계가 알고보니 DNA에 광범위한 패턴으로서 새겨져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내가 지지하는 이념의 집단이 번성하는 것도 내가 아들딸을 낳는 것만큼 정말로 생물학적으로 성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10달 전 · #수필
13th Global Trajectory Optimization Competition 작성 중
11달 전
여기 파일 탐색기가 로드됩니다. 탐색기가 오래도록 보이지 않는다면 페이지를 새로고침해보세요. 어릴 때 TV를 보다 보면 종종 자료화면으로 교수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뉴스에서 "날이 추워지니 따뜻한 물을 많이 마셔 호흡기 질환을 예방하세요."라든가, 스펀지에서 "네 사실입니다. 소설 <죠스>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될 때 <아가리>라는 이름으로 들어왔습니다."처럼 이 대답을 꼭 교수한테까지 가서 들어야만 했을까 싶은 경우가 많았지만, 제작진은 답변뿐만 아니라 교수라는 자리가 뒷받침하는 그 답변에 대한 신빙성까지 인터뷰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교수들의 배경에 있던 책이 가득찬 서재는 그 신빙성을 한층 높여주었다. 그 서재를 보면서 나는 '나도 어른이 되면 저런 서재를 가지게 될까?'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이러고 있다 그로부터 약 20년 후. 나는 어른은 됐지만 여전히 그런 서재는 가지고 있지 않다. 책 몇 권과 직접 인쇄한 몇 개의 종이 뭉치가 연구실 내 자리에 있는 자료의 전부다. 이렇게 단촐한 사무 공간의 구성은 연구자로서의 내 경력이 짧아서만은 아니다. 우리 학교에서만 15년을 보내신 나의 지도교수님께서도 과거 방송에서 보던 교수들의 서재에 비하면 비교적 적은 수의 책을 책장에 두고 계신다. 오늘(2025.11.30.)자 나의 연구실 자리 사무 공간의 간소화에 더 큰 역할을 한 것은 오히려 자료의 디지털화인 것 같다. 현대의 우리는 태반의 자료를 컴퓨터로 다룬다. 지금 쓰는 이 글도 그렇듯 나는 디스플레이와 키보드로 읽고 쓰는 일이 종이와 펜으로 그러는 일보다 월등히 많다. 여러분도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다. 드라이브에 쌓여가는 자료의 양이 점차 많아지면서, 이들을 지속 가능하게 관리하기 위한 체계가 꼭 필요했다. 이 체계는 내 개인 컴퓨터가 생긴 고등학교 즈음부터 시작해 계속 발전되어왔고 이제 상당히 안정적인 상태에 수렴해있다. 현대에 지식 노동을 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가 이런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나와 타인의 체계를 서로 들여다볼 기회는 많지 않다. 과거의 서재는 그 물리적인 존재가 거추장스럽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지난 노력을 보여주는 증거(교수님들 배경에 있던 책들), 또 남의 노력으로부터 우연히 배우는 기회(어 이건 무슨 책이야?)가 되기도 했다. 서재의 디지털화는 우리로부터 이런 낭만을 많이 앗아갔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내 디지털 서재를 능동적으로 소개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이 글 상단에 있는 파일탐색기는 실제 내 아카이브 구조를 여러분이 직접 탐색해볼 수 있도록 구현한 것이고, 이어지는 내용은 그중 언급할만한 요소들을 설명한 것이다. 글 중 등장하는 이런 표현 은 그 아카이브 속의 구체적인 디렉토리/파일의 이름 혹은 경로를 뜻한다. ~ 는 내 홈 디렉토리( Macintosh HD/Users/gunheeyi )를 나타내는 축약어 이다. 이 글을 쓰던 어느날 밤 내 유튜브 알고리즘. 우연인가? 디렉토리 아카이브를 이루는 디렉토리(폴더) 중 주요한 것들. ~/iCloud Drive 자료들은 몇 가지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두 iCloud에 저장된다. 나는 현재 네 대의 컴퓨터를 두고 위치/용도별로 바꾸어가면서 쓰는데, 이들과 태블릿, 휴대폰을 포함 모든 기기에서 연속적으로 작업하기 위해서는 클라우드의 사용이 필수적이다. 이전에 Windows PC + Galaxy 폰 조합을 쓰던 시절에는 Google Drive를 잘 사용했지만 애플 생태계로 넘어오면서 자료와 사진까지를 전부 iCloud로 옮겼다. 데스크톱/모바일 환경을 가리지 않고 모두 운영체제에 빌트인되어 별도의 설치 과정 없이도 잘 작동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앞서 언급한 클라우드 동기화의 예외로는 먼저 웹으로부터 다운로드하는 파일들이 있다. ~/Downloads 에 저장되는 이 파일들은 내용 확인 후에 장기 보관할 필요가 있을 경우 iCloud 아래 디렉토리로 옮겨지고, 그렇지 않을 경우 즉각적으로 혹은 주기적인 다운로드 폴더 정리 시 삭제된다. 또 하나의 예외는 이후 설명할 dev 디렉토리의 자료들이다. ~/iCloud Drive/yearly yearly 는 iCloud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디렉토리이다. 시간순으로 정리 가능한 거의 모든 자료가 여기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바로 아래 구조로 2025 와 같은 연도가 이어진다. 자료의 분야별 구분은 각 연도 디렉토리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2024 아래에는 선보엔젤파트너스 (진학 전 다니던 회사), kaist (연구 및 코스웍), founders (연초 활동한 창업학회), freelancing (개발용역), misc (miscellaneous = 기타 잡다한 자료) 등의 하위 구조가 이어진다. 연도가 아닌 분야를 가장 큰 분류로 두는 design choice도 물론 가능했겠다. 하지만 언제 - 무엇을 한다는 순서로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더 자연스러웠고, 어떤 해에 내가 하고 있는/있던 일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아 나는 연도별로 분류하는 편을 택했다. 한 분야의 자료지만 기간의 중간에 해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다음 해에 이어지는 기간이 길지 않다면 그냥 주 연도인 첫 해에 모든 자료를 넣어버린다. 3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의 학년도(academic year), 첫 해 여름에 시작해 이듬해 1월에 마무리한 개발용역 등이 이에 포함된다. 여러 해에 유의미하게 걸친 자료의 경우 불가피하게 여러 연도 아래 같은 이름의 디렉토리를 둔다. ~/iCloud Drive/yearly/future yearly 아래 future 디렉토리를 만든 것은 가장 최근의 변화 중 하나다. 시간상 미래에 일어날 예정이지만 그 시기가 아직 불분명한(분명한 것은 future 가 아닌 구체적인 연도 아래 바로 담긴다) 일들에 관한 자료가 여기 위치한다. 구체적인 예로는 결혼, 육아, 박사후연구원, 취업, 가보지 않은 여행 등이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 과거 기록 대신 위시리스트나 그때 가서 유용할 꿀팁, 지원 제도 등이 주를 이룬다. future 가 생긴 이상 yearly 를 chronological 로 바꾸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려나? ~/iCloud Drive/resources 남겨두어야 하지만 시간에 구애받지는 않는 자료들은 resources 에 담긴다. 책, 좋아하는 예술 작품, 악보, 연락처, 소프트웨어, 운영체제 및 프로그램 환경 설정, 배경화면 이미지, 폰트, 문서 템플릿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iCloud Drive/tunnel tunnel 은 기기 간 자료 이동에 사용된다. 클라우드의 다른 디렉토리들은 자료를 "구름" 위에 올려두고 언제든지 내려받아 쓸 수 있게 한다면, tunnel 은 말그대로 지상에 존재하는 기기들 사이에 자료를 빠르게 공유할 수 있는 터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료는 이동하는 잠시 동안만 여기에 있다가 존속할 다른 위치로 곧 옮겨진다. 이 디렉토리도 내가 소유한 기기 개수가 급격히 늘어난 최근에야 비로소 만들어졌다. 간결하면서도 뜻을 완벽히 전달하는 tunnel 이라는 이름을 짓고 혼자 좀 뿌듯해했다. ~/dev dev 는 내 연구, 코스웍, 사이드프로젝트, 개발용역, 본 사이트 등을 위한 코드베이스를 모두 담고 있는 디렉토리다. dev 가 iCloud Drive 밖에 있는 것은, 이러한 소스코드들은 보통 iCloud와 같은 범용 클라우드 서비스가 아닌 "버전 관리 시스템"이라는 다른 소프트웨어(Version Control System, VCS)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코드를 작성하는 개발자라고 상상해보자. 만일 당신이 새로 작성한 코드가 어딘가 오작동을 일으켰다면 멀쩡히 돌아가던 마지막 버전으로 롤백할 수 있는 기능이 아주 유용할 것이다. 또 각 버전에 추가/변경된 내용을 단어별로 들여다보거나, 여러 명의 병렬 작업으로 분기된 결과물을 검토 후 자동으로 합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일반 클라우드 서비스에서는 불가능한 이러한 기능들을 담은 소프트웨어가 바로 VCS다. 코드베이스의 백업 및 동기화도 VCS로 가능하다. *사실 이건 코드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의 자료이든 간에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단순 텍스트로 이루어진 코드에 비해서는 추가/변경의 기록이 *비단 코드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의 문서든 간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무척 편리할 것이다. 그리고 그게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세상이기는 한데, 거의 모든 것이 단순 텍스트로 이루어져 이력 관리가 쉽고, 모든 것을 통제하기를 좋아하는 개발자들이 이런 유토피아를 먼저 만들어버리고 말았을 뿐이다. git 소스코드가 110만 줄임 --> 게다가 코드베이스는 일반적인 클라우드로 동기화해서는 안 될 특성도 가지고 있다. 코드베이스에 속한 라이브러리(= 누군가가 이미 작성해놓아서 그대로 가져다 쓰기만 하면 되는 코드 "밀키트") 중에는 그 안에 몇 백, 몇 천 개의 개별 파일을 담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라이브러리 몇 개 갖다 쓰다보면 프로젝트에 속한 파일이 몇 만 개를 어렵지 않게 넘긴다. 이렇게 많은 수의 파일은 각각의 크기가 크지 않더라도 동기화 서비스에 대단한 부하로 작용한다. VCS에 익숙치 않던 주니어 개발자 시절에는 어수룩하게 코드베이스를 Google Drive에 두었다가 드라이브 클라이언트가 맛이 가서 곤란을 겪은 적이 있다. VCS에서는 이런 요주의 파일들을 한번에 동기화 대상에서 제외해놓을 수 있다. 명명법 각 디렉토리/파일들은 다음 규칙에 따라 명명한다. kebab-case 디렉토리와 파일들은 기본적으로 영문 kebab case를 따라 이름을 붙인다. camelCase PascalCase snake_case kebab-case 여러가지 영문 표기법들 (개발자들이 진짜 쓰는 이름들이다) 이 선택은 순전히 컴퓨터공학적 관점에서의 편리함에 따른 것이다. ① 이름에 포함된 한글은 코드/명령어를 입력하는 도중 한글 ↔ 영문을 오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낳고, 인코딩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② 영문 대소문자의 혼용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같은 것으로 혼동하게끔 만들 수 있다. ③ 공백은 자칫 컴퓨터가 경로를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문자열로 혼동하게끔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do something.py 라는 파일을 Python으로 실행하고자 할 때 이름을 따옴표로 감싸지 않고 python do something.py 라고 명령한다면, 컴퓨터는 해당 파일을 정상적으로 실행하는 대신에 " do 파일은 없는데요? something.py 는 또 무슨 소리죠?"라고 반항할 수 있다. 영문 kebab case는 이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공백을 대체하는 문자( - )를 입력할 때 shift 를 누르지 않아도 되므로 snake case( _ )보다도 약간 더 편리하다. 단순 띄어쓰기가 아닌 맥락의 분리가 필요한 경우 의도적으로 _ 를 쓸 때도 있기는 하다. 영문자와 숫자, - 및 _ 를 제외한 문자들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모르므로 사용을 최대한 지양한다. 버전 같은 문서의 각기 다른 버전은 난 다음과 같이 이름 붙인다: ① 작업이 $n$% 완료되었을 경우 버전은 v$n$ ② 완성본 및 준완성본의 버전은 각각 vF (final), vSF (semi-final) 예를 들어 한국항공우주학회 2025 춘계학술대회에 제출할 논문의 반 정도 완성된 안, 그리고 준완성본의 파일명은 각각 KSAS202
11달 전 · #수필

전에 나는 수학귀신 이라는 제목으로 신체의 성장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되는 정신적 성장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가 22년 5월, 그러니까 성인이 되고 나서 4년 정도가 흐른 시점이었다. 비슷한 만큼의 시간이 한 번 더 흘렀다. 성장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그때는 못했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중에는, 추워서 큰 고생을 하기 전에 제때 장갑을 꺼내어 끼는 것(놀랍게도 난 그걸 올해에 와서야 제대로 해낸 것 같다)처럼 사소한 것도 있고, 아주 근본적이어서 내 삶의 전반에 걸쳐 도움이 되는 것도 있다. 오늘은 그 후자에 속하는 것 중 하나를 적어보려고 한다. 사람에게 감정은 왜 존재할까? 감정을 가지는 건 생존에 유리하다. 공포는 우리를 위험에서 도망치게 하고, 분노는 위협에 맞서 싸우게 한다. 희망은 우리가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며, 사랑과 공감은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고 집단생활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감정이 항상 유용한 방향으로 작용하지만은 않는다. 감정이 일을 망칠 때가 있다. 너무 기쁠 때, 사실 그건 뭐 큰 상관 없다. 그만큼 좋은 일이 있다는 건데, 다른 건 좀 망치면 어때. 그만한 기쁨은 빈도가 높지 않고 지속시간도 짧으니까 그냥 만끽하면 될 것 같다. 문제는 반대의 경우다.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지배할 때. 좋지 않은 일을 이미 한 번 겪었음에도 거기서 파생한 감정 때문에 다른 일까지 연쇄적으로 망치게 생겼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잠깐 동안만 감정을 느끼지 않는, 오로지 이성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로봇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가능할리가. 감정이 드는 건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건 그 감정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세월이 흐르면서 정립한, 내가 감정에 대처하는 매뉴얼은 다음과 같다. *** 먼저 기간을 보자. 당신의 감정은 생겨난지 얼마나 되었는가? 1. 방금 생겨난 거라면 쉽다. 순간적으로 드는 감정은 그만큼 빠르게 사그라든다. 예를 들어, 분노는 그것을 유발하는 생체 화합물이 생성되고 다시 사라지기까지 90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별 전략이 필요 없다. 1-2분 가량의 골든타임만 버티면 된다. 그 짧은 시간 동안만 감정이 주도하는 말과 행동을 삼가자.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은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 해서, 자신은 책상에 2분과 5분짜리 모래시계를 두고 중요한 결정을 실행하기 전 시계를 뒤집어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 동안 감정이 배제되고, 많은 결정들이 바뀐다고. 그걸 인상깊게 보고 나도 다이소에서 3분짜리 양치용 모래시계를 하나 사서 책상에 올려두었다. 그걸 뒤집을만큼 격정적인 순간은 다행히 아직 없었지만. 2. 오래도록 빌드업되어왔거나 지속되는 감정, 이건 좀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2.1. 우선 감정의 원인을 찾는다. 나는 지금 왜 기분이 나쁜가? 식별에 성공했다면, 그 원인으로 인해 이 정도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정당한지 따져본다. 본인의 감정에 정당성을 따진다라, 사이코패스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건 실로 큰 도움이 된다. 따져보고 나면 그렇게 대수로운 일이 아니거나, 심지어는 별 이유가 없는 경우도 놀랍게도 꽤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엔 전자는 남에 대한 실망, 후자는 우울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 같다. 이 단계를 통해서 정당성이 없음을 밝힌 감정은 이제 몰아내기가 비교적 쉽다. 2.2. 나름의 이유가 있는 감정을 다루는 다음 단계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내 태도는 바꿀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reframing이라고 부른다. 가령 어떤 학회에서의 발표를 시원하게 말아먹었다면 이를 실패로 여기고 좌절에 빠져있기보다는, 부족한 점을 채우고 다음에 더 잘 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면 당장의 기분이 나아질뿐만 아니라, 이번 실수를 다각도로 분석, 기록하고 미래를 더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reframing 2.3. 여전히 부족한가? 그럼 이제 적극적으로 싸워라. 감정을 물리칠 수 있는 능동적인 활동을 몇 개 식별해놓고 기분이 나쁠 때마다 그걸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이 활동은,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러니까 취미 같은 것과는 맥락이 약간 다르다. 그런 것들은 한 구석에서의 기분을 끌어올려 다른 구석의 저하된 감정을 중화할 수 있고,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행동들은 저하된 바로 그 구석의 무드 자체를 0에 가깝게 되돌려놓을 수 있는 것들이다. 각자에게 효과적인 행위는 모두 다를 것이다. 내게 효과적이었던 방법을 몇 개 소개하자면: 수면 깊은 밤 드는 많은 상념들을 높은 확률로 타파할 수 있다. 그러니까 시간이 늦었으면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디비 자자. 유산소 운동 얇고 길게 할 수 있는 운동, 바깥 풍경을 보며 할 수 있는 것들이라면 더욱 좋다. 야외 러닝, 자전거 타기 같은 것들. 개인적으로 무산소운동은 감정 조절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영화 시청 악기 연주 쓰다 보니까 방금 깨달은 건데, 나열한 모든 활동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수면은 뭐 당연하고, 유산소 운동 중에는 호흡과 페이스를 조절하느라, 영화를 시청할 때는 주인공의 상황에 이입하느라, 악기 연주는 한 음도 틀리지 않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그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태를 최소 수십 분간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감정을 상하게 했던 일과는 강제로 얼마간 분리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행위들은 회복의 기능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2.4. 하지만 이 모든 단계를 거치고도 통제되지 않는 감정은 어떻게 할까? 이제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 이기적으로 생각해보자. 이러고 있는 것이 내게 득이 되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세상이 날 억까하는 게 맞고, 긍정적인 부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숙면과 러닝 정도로는 극복되지 않는 감정을 남기는 일들. 하지만 그런 일을 겪었다고 평생을 좌절과 냉소주의에 빠져 지낼 것인가? 그건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절망적인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움직이는 것이다.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사람이 결국은 승리하는 개체다. 이 마지막 비기를 매뉴얼에 추가한 것은 어느날 내게 추천된 유튜브 영상을 보고 나서였다. 아래 퍼온 그 영상을 여러분도 꼭 한번 보길 바란다. 1분짜리 영상을 보고 인생이 바뀐다? 그런거 난 잘 믿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상은 내 인생을 바꿨다. 송두리째는 아니어도, 앞으로 살아갈 긴긴 세월 동안 맞닥뜨릴 수많은 시련을 극복할 수 있도록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풀버전은 여기 있다. 반복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건 실패밖에 없을 때, 내 자신이 자꾸 시니컬해지려고 함을 느낄 때, 나는 항상 코난의 말을 떠올린다. *** 이런 매뉴얼이 없던 불과 몇 년 전의 나를 떠올린다. 참 어렸다. 별거 아닌 일에 삐지고, 딱히 이유도 없는데 우울에 빠져서 거기에 소용돌이처럼 휘말려 들어가기도 했다. 이제는 많이 노련해졌다. 웬만한 일로는 감정이 잘 상하지 않는다. 아니, 상해도 금방 되돌릴 수 있다. 항목 2.4까지 가야 하는 일이 얼마 전에도 있었다. 게다가 2.3 능동적인 활동도 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었어서 꽤나 위태했는데, 2.4를 떠올리니 극복할 수 있었다. 이 매뉴얼을 세우고 나서 극복하지 못한 일은 아직 없다. ⋮ 이러다 보니 요새는 오히려 반대의 고민이 (아주 약간) 생겼다. 인생이 재미가 없다. 더 구체적으로는, 삶이 역동성을 많이 잃어버렸다. 연구하고, 이런 글을 쓰는 일상 속의 즐거움은 아직도 유효하지만 과거에 존재하던 많은 변수들로부터 비롯되던 재미는 많이 줄어들었다. 뭘 더 얼마나 건강해져보겠다고 탄산음료도 끊은지 2년쯤 되었다(이로써 술 담배 커피 탄산음료 등 그 어떤 기호식품도 소비하지 않는 노잼 인간이 되어버렸다).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감정기복도 크지 않은 사람, 그게 내가 추구하는 이상이긴 했는데 정작 그걸 달성하고 나니 이게 잘 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아이러니. 처음에는 이리로도 구르고 저리로도 구르다가, 나중에 가서는 조금씩의 움직임으로 결국에는 안정적인 지점에 도달하는 stochastic gradient descent처럼 원래 인생이 그냥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여튼 난 이런 삶을 살고 있으니, 여러분이 이따금씩 내 인생에 등장해 변수가 되어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것도 좋겠다.
1년 전 · #수필

1년 전 · #책

© 2026 이건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