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중.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과 함께 대출, 레전드 뒷북 독서 시리즈 시작. 알았어야 할 것들이 뭐이리 많아
6달 전 · #책

작년을 시작하는 책이 한강의 「소년이 온다」 였다면, 2026년을 연 것은 이 책. 좋은 선택이었다.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게 맞는건지 이십몇년을 살고 난 요즘에야 막 깨닫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깨닫는 것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팔십몇년을 먼저 살아온 당신의 글로부터 확인합니다. 고맙습니다.
9달 전 · #책

1년 전 · #책

1년 전 · #책

1년 전 · #책

읽는 중
2년 전 · #책

읽는 중 *다음은 간만에 입맛에 맞는 소설을 찾아 흥분한 필자의 두서없는 폭주 감상문이니 읽는 이들의 주의를 바란다. **아래 "SPOILER ALERT!" 전까지는 스포일 위험도가 낮다. 일부 사항을 언급하긴 했으나 대부분 1부 초반부터 나오거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을 내용들이니 안심하라. 이 글이 오히려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Radiohead -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 <삼체>의 예고편 중 하나 에 삽입된 음악의 원곡인데, 책이나 이 감상문을 읽으면서 들을 노래를 찾는다면 이걸 들어라. 뽕맛이 두 배가 된다. ⋮ ⋮ --> 첫만남 넷플릭스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다 보고 나니 이어 나온 예고편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삼체』. 예고편을 끝까지 보았지만 스케일이 크다는 것만 느껴질뿐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전혀 짐작이 안 가서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다. 또 원작이 내가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 중국 소설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설국』을 읽은 직후에 도전하기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아시아 소설 최초로 휴고상을 수상하고, 오바마도 이 책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 소설부터 바로 읽기로 했다. 3월 말,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가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원작 소설도 이미 꽤나 많은 인기가 있는 듯했다. 원작 소설은 총 3부로 이루어져있는데 그중 1권이 동네 도서관은 이미 예약 가능 인원 초과, 전자도서관은 예약이 15명, 이튿날 다시 보니 22명으로 늘어있었다(지금은 45명이다ㅋㅋ). 어중간하지도 않게 그냥 이번 계절 안에는 대출이 불가능한 인원이길래 그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았다. 교보문고에서 책을 직접 사는 방법을 알아보았는데 종이책은 꽤 비쌌고(15,300원. 한끼 식사, 영화 한편에 비슷한 금액을 태우는 세상에 그리 비싸지 않을 수도 있는 금액인데 이상하게 책에 대한 가격 저항은 세다) 전자책 가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교보문고의 전자책 구독 서비스인 sam으로 삼체를 빌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달마다 일정 권수를 빌릴 수 있는 프리미엄, 그리고 무제한 플랜이 있었는데 무제한이 더 저렴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이러한 가격 책정에는 두 플랜으로 각각 빌릴 수 있는 도서 pool에 차이가 있다는 이유가 있었다. 프리미엄 플랜으로는 『삼체』를 대여할 수 있었지만 무제한 플랜은 그렇지 못했다. 사실 이건 미련하게도 무제한에 혹해서 그걸 먼저 끊고는 삼체를 빌리지 못한다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깨달았다. 월 당 두 권의 프리미엄 플랜이 월 9000원. 책을 꾸준히만 읽는다면 오프라인 도서관에서 원하는 도서를 예약해놓고 - 제때 찾아가고 - 다시 반납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저렴하다는 생각, 그리고 첫달은 1000원 행사를 하길래 다른 온라인 구독 서비스에 비해 큰 고민 없이 결제했다. 돈은 물건뿐만 아니라 시간과 체력도 살 수 있는 수단임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업데이트** 2권을 빌리려는데 계속 오류가 나길래 고객센터에 문의했더니 그새 pool에서 『삼체』가 빠졌다고 한다! 맙소사. 넌 바로 해지다. 줬다 뺏는 게 어딨어 과학기술과 상상력이라는 양 날개를 달고 창공을 향해 비상하는 작가 *작가 류츠신에 대한 혹자의 평가. 오바마는 『삼체』에 대해 "작품의 스케일이 워낙 커서 그걸 읽는 동안에는 백악관의 일상사가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 책을 읽기 전에는 그 말이 의아했다. 해봤자 책, 텍스트인데 어떻게 그 정도의 인상을 줄까. 그러나 그 말을 이해하는 데까지 몇 페이지 걸리지 않았다. 왕먀오가 "삼체" 게임을 시작한 직후 난세기에서 사람들이 탈수해 얇은 가죽으로 변한다는 걸 읽었을때,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건 그럴 법 하면서도 한번도 본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는 그림이었다! 그때 나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해보지 않는 특이하고 신선한 것을 상상하는, 그리고 그것이 어울리는 배경을 설정하는 작가의 능력에 반했다. 삼체 세계에서의 항성의 거동도 마찬가지다. 삼체문제의 일반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우주에는 쌍성계가 단일 항성계보다 많다는 사실 모두 책을 읽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별이 겨우 하나 늘어난 삼성계의 경우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복잡한 삼체 운동으로 인한 그 항성계에서의 생명의 삶은 더더욱. (실제로 관측(추정)된 최다 다중성계는 3중성도 아닌 무려 7중성계 라고 한다!) 갑자기 옛 삼성전자 로고가 다르게 보이는걸 이야기 전개의 자연스러움이나 과학적 타당성이 약간 떨어져보이는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양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미숙한 단계에 있던 비도(飛刀)가 바로 작전에 투입된 부분이나, 양성자 펼침(이 애초에 가능한 지에 대해서도 의문이지만 가능하다고 가정했을 때 지자(智子)는 묘사된 것보다 훨씬 더 큰 파괴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등. 다만 이것들은 소설적 자유라고 충분히 납득할 만한 범위 안에 있긴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고편에 달린 댓글 중에는 소설의 과학적 기반이 아주 단단하지는 못한 편이라서 영상으로 옮기기에 애로사항이 많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작품 속 세상의 설정이 얼마나 견고한지는 다른 유명한 SF소설들을 더 읽어보며 비교해보아야겠다. 소설의 매체적 특성에 관한 고찰 — 영화와는 다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소설이라는 예술의 갈래를 더 좋아하게 됐다. 소설은 이야기의 전달이 주된 목적이라는 점에서 영화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영화와 달리 가진 장점들에 주목했는데, 그 첫번째는 내 템포에 따른 소화가 가능하다는 것. 영화 보는 것을 즐기고 또 많이 보아왔지만 그에 비해 등장인물과 그 관계, 이야기 흐름을 영화의 첫 관람만에 완벽히 이해하는 내 자신의 능력은 떨어진다고 항상 생각해왔다. 그래서 요즘은 같은 장면을 여러번 돌려볼 수 있는 노트북으로 영화를 시청하는 걸 더 선호하기도 했다(웅장한 시각·음향 효과가 주를 이루는 일부 제외). 그러나 소설은 기본적으로 내 페이스에 맞추어 읽는다. 느리게 읽어도, 다시 읽어도 좋다. 메모를 하면서 읽어도 된다. 덕분에 다 읽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릴지언정 완독하고도 뭔가 놓쳤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두번째 장점은 글이라는 매체의 유연함에 기인한 표현의 확장 가능성에 있다. 사실 이건 독자보다 작가 입장에서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나 또한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여기에 주목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소설 원작의 드라마의 존재를 아는 채로 읽다보니 이 내용을 영상으로 다시 만든다면 어떤 모습이 될지를 책을 읽으며 계속 상상했다. 쉽지 않았다. 이야기의 스케일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스토리보드로 옮기고, 실제 영상으로 제작까지 해내려면 한 명은커녕 수 백 명도 부족한 일손이 들 터였다. 하지만 똑같은 이야기를 류츠신은 혼자 그려냈다. 소설에서 작가는 독자의 상상력에 기대어, 자신이 명시하지 않는 부분은 그것이 대신 채워줄 것으로 믿고 표현하고 싶은 부분에만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다. 결국 소설을 이해한다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만큼이나 거대한 독자의 상상력이 함께 작용하여 이루어내는 합작품인 것이다. 이런 특징 덕분에 소설 속 작가의 세계는 무한히 확장 가능하다. 1부 초반에 이런 구절을 읽었을 때 혼자 속으로 웃었다: "왕먀오와 스창은 물가의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적당한"이라니! 영상에서는 "적당한"이라는 어중간한 표현이 통하지 않는다. 모든 걸 구체화해야 한다. 이 장면을 영상으로 옮기려면 먼저 고즈넉한 강가와 거기서 앉을만한 바위를 찾고, 온화한 계절과 날씨에 맞추어 그 장소에 찾아가 결정적인 시간대에 미리 섭외한 배우들의 연기를 촬영해야 했을 것이다. 이 고된 과정을 글은 그냥 한 단어로 퉁칠 수 있는 것이다. 영상을 각종 장비와 계측기를 요하는 공학에 비유한다면 글은 분필과 칠판만 있으면 되는 수학과도 같다. 소설의 수준은 오롯이 상상하고 표현해낼 수 있는 작가의 능력에 달렸으며, 그렇기에 쓰기는 쉽지만 동시에 좋은 소설을 쓰는 것은 어렵다. — 영화와 비슷한 한편으로는 영화와 비슷한 장점도 있다. 처음 보는 분야나 장소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는 건 내가 영화 관람을 즐기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내 원픽 감독인 데에는 그의 작품이 다루는 허구의 이야기가 몹시 그럴듯하다는 점도 있지만 그 이야기들이 진행되는 신선한 배경에도 있다. <인터스텔라>의 가르강튀아 블랙홀, <덩케르크>의 덩케르크 해안, <테넷>의 수장고와 오페라 극장, <인셉션>의 파리 도심과 설원 등등.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여행을 떠난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때 발생하는 쾌감이 『삼체』를 읽으면서도 느껴졌다. 중국 소설을 읽는 게 처음이다보니 등장하는 모든 중국 지명이 새로웠고 문화대혁명 같은 시대적 배경도 신선했다. 삼체 세계는 말할 것도 없다. '쟁(箏)' 작전이 실행될 때 그 쾌감은 최대치를 찍었는데 바로 흘수와 건현, 파나맥스(Panamax) 같은 용어들을 모두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 어렵지도 않은데 지금까지 들어본 적조차 없던 이런 개념들을 이 책이 아니라면 난 어디서 접할 수 있었을까. 주제넘는 걱정 수준이 높으면서도 내가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오랜만에 읽다보니 이런 걱정도 했다: '이제 웬만한 소설은 성에도 안 차면 어떡하지?'. 그런 경험이 이전에 그림을 보면서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순전히 외부적인 요인으로, 누구를 따라가서, 혹은 싼 값에 표를 구해서 몇몇 미술 전시를 가보면서 나는 점차 내 자신이 그림 보는 것을 꽤나 좋아하는 사람임을 알게 됐다. 그걸 깨달은 20대 초반 이후로는 어디를 여행하든 시간이 허락하면 그곳의 미술관을 꼭 들렀다. 덕분에 그림이라는 넓은 범주 안에서 다시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주제와 화풍을 식별할 수 있었고, 또 만족스러운 관람에 요구되는 그림의 수준도 높아져갔다. 그러다가 작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을 보러 갔다. 영국 내셔널갤러리는 그림을 볼 줄 모르던 정말 어린 시절에 가보았던게 다라 항상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인물을 담은 유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그림이라서 이 전시에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방문한 첫날에는 이미 당일 표가 다 팔려서 관람에 실패했지만 다음날 다시 방문해서 기어코 입장했다. 그러나 막상 관람을 마친 뒤 남는 건 실망감이었다. 수 십 점에 달하는 그림들, 개중에는 렘브란트처럼 유명한 작가의 그림도 있었지만 이들 모두 내 마음을 크게 움직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전시에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단지 내 기준이 높아졌을뿐. 이제는 웬만한 그림들로는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유명한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먼길을 떠나야 볼 수 있는 소수의 그림들만이 눈에 차겠구나, 하는 막연한 걱정이 실제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몹시 건방지게 들릴 것임을 안다. 그렇지만 내 느낌이 그랬다. 이런 비슷한 걱정이 『삼체』를 읽으면서도 든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니 그림보다는 상황이 훨씬 낫다. 그림은 화면을 통해서나 인쇄된 것으로는 원본의 감동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원본을 찾아가서 보아야만 한다. 그에 반해 소설은 사본이 원본과 똑같은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 원문이 외국어로 되어있을 경우 번역이라는 새로운 장벽을 넘어야 하긴 하지만. 시라면 몰라도 소설에서의 번역 장벽은 그림에서의 복제 장벽보다는 훨씬 낮아보인다. 따라서 원본으로의 접근성 문제는 사소해지고 오히려 좋은 책을 발굴하고 꾸준히 읽고자 하는 내 의지가 병목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주제넘는 걱정보다는, 내 나태함으로 인해 뛰어난 소설들 대부분을 시작도 못한 채로 죽을 걱정을 먼저 하기로 했다. 그럼 이제 2권으로 다시 달려보자! <!-- 책, 글이 좋다. 적당히만 설정을 쓰고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면 되기 때문이더. Ex. 왕먀오와 스창은 물가의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Adobe PDF: 삼체에서 온거임? https://www.youtube.com/watch?v=8_RRZcqBEAc 해봤자 텍스튼데 상상력이 대단해도 얼마나 대단하다고..,. 했는데 사람을 탈수시킨다? 사람으로 컴퓨터만들기? 대단하면서도 중국스러운 상상력 유한요소법? 스펙트럼법? 베르나르 베르베르 넘어서나? 삼성! 영화를 볼 때도 내가 경험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주제, 배경의 이야기를 좋아하는데(인셉션을 좋아한 이유 중 하나) 삼체를 읽으면서도 그걸 경험했다. 흘수/건현, 파나맥스. 들어볼 일이 있었겠어? 선박 관련 용어들: 흘수/건현, 파나맥스(Pa
2년 전 · #책

일본은 내게 가깝고도 먼 나라다. 북한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와 물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그래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여행지인 일본. 꽤나 많은 해외여행을 다녔음에도 그런 일본을 나는 아직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 가장 큰 이유로는 해외여행을 다닐 때 적용되는 내 특수하고 개인적인 상황이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도 단지 일본이 나랑 안 맞는다고 느꼈다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여행을 가장 큰 취미 중 하나로 삼는 나지만 일본을 찍은 사진은 내게 떠나고픈 설렘을 준 적이 거의 없다. 아,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곳이 딱 한 군데 있는데 바로 겨울의 삿포로다. 하지만 그곳의 사람과 문화보다는 눈내린 자연 경관이 궁금했던 것이니 일본의 '문화'는 아무래도 나를 잡아끄는 요인은 아닌 듯하다. 물론 무언가를 제대로 경험해보기도 전에 그건 나와 안 맞는다고 단정짓는 건 위험한 일이다(여행지도, 진로도, 사람도). 그래서 누군가 내게 일본을 같이 여행하자는 제안을 해온다면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언젠가 혼자 가볼 수도 있다. 일본만큼 가까운 나라인 중국도 여행 전보다 후에 내 인식이 훨씬 더 좋아졌던 것(사실 이건 두 번의 중국 여행 모두 각각 어떤 authority 아래서 편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지만)을 생각하면 더욱 그래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심상을 이야기할 때, 일본은 나와 잘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의 예술로 대상을 좁혔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독보적인 지위를 구축했고 나도 이를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나에게 예술적인 울림을 준 작품은 『센과 치히로』를 제외하면 없다. 일본의 문학으로 가면 상황은 더욱더 심각해져서 내가 끝까지 완독한 일본 문학이 거의 없을 정도다. 적어도 내 기억엔 없다. 그래서 며칠 전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완독이 쉽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었다. 사실 집에 오래 전부터 있었어서 몇 년 전에 한 열 쪽 스무 쪽 읽다 내팽개친 이력도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한번은, 적어도 한번은 일본 문학도 제대로 경험해보아야 한다고, 그리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자세를 고쳐앉고 독서에 임했다. 이 정도 길이도 다 못 읽으면 넌 빠가사리다, 라고 결의를 다지며(오 이럴 땐 일본어가 찰지군). 그 과정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160쪽 남짓을 읽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거야'라고 생각하길 수십 번. 일본과의 케미가 나랑 비슷한 정도인 것 같은 어머니께서 옆에서 보시면서 그건 끝까지 읽어도 모를 거라고 알려주셨지만 나는 애써 부정하며 결국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결론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불륜이 공공연히 자행되는 것, 그럴 수 있다. 작품 속 시대와 문화가 내가 사는 세계와 다르고, 보편적으로 부도덕한 일도 그것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작품 속에서야 뭐 문제 없다. 하지만 이야기에서는 그 어떤 메시지도 읽어내지 못했다. 그럼 문체에 집중해야 하나? 비평들을 보면 이 책이 문체로 유명해진 건 맞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작가가 독특한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그 독특함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건 감동보다는 마치 최준의 B대면데이트를 보고 있으면 드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과 거부감에 가까웠다. 이유가 뭘까? 일본의 문화를 내가 알고 있지 못해서일까? 언어를 옮기면서 운율과 같은 의미 외 요소가 소실된 탓일까? 아니면 정말 그냥 나랑 안 맞는 것뿐일까? 마지막 경우라면 이건 참 흥미로운 사례다. 사실 난 상당히 재미없는 부류의 사람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즐기지만 나는 향유하지 못하는 것들이 꽤 있다. 이를테면 커피 마시기, 음주, 스포츠 팀 응원 등등. 이것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이해는 한다. 이들과 다르게 『설국』이 흥미로워지는 것은 그것을 좋아할 이유조차 모르겠다는 데에 있다. 『설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화이글스 팬이나 소주 애주가보다 발견하기 힘들지만 『설국』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분명 그러한 사람이 많다는 걸 의미할텐데. 일본 문화권 밖에,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설국』을 제대로 즐겼던 사람이 있다면, 내게 한번 대화를 걸어 나를 일깨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세계인지 나를 납득시켜줘. 기껏 오랜만에 길게 써내려간 독후감 요지가 '이건 나랑 안 맞는 것 같다'라니 나로서도 좀 아쉽지만, 솔직한 감상이 그랬다. *** 아래는 『설국』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가 일본어를 할 줄 몰라서, 운율을 읽지 못해서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떠올랐던, 예전에 지나쳤던 유튜브 영상. The bigger the circle of the known, the greater the contact with the unknown. 언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평생 배우지 못할 언어로 된 수작들은 얼마나 많겠냐는 생각에 슬퍼진다는, 자랑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공감되는 내용이다.
2년 전 · #책

회사 대표님께서 라운지에 남아돈다고 그냥 주신 책. 나도 모르는 새에 가장 많이 방문하는 소매점이 된 다이소. 그들에 대한, 항상 궁금하긴 했지만 따로 찾아볼 정도는 아니었던 질문들에 답이 되는 이야기라 정말 즐겁게, 금세 읽었다. 다음에 다이소에 방문하면 매장에 대한 박정부 회장의 진술이 사실인지 따져보는, 또 제품에 들어간 수많은 고민들을 상상해보는 재미있는 일들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2년 전 · #책

읽는 중
2년 전 ·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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