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이성적 제어
전에 나는 수학귀신이라는 제목으로 신체의 성장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되는 정신적 성장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가 22년 5월, 그러니까 성인이 되고 나서 4년 정도가 흐른 시점이었다. 비슷한 만큼의 시간이 한 번 더 흘렀다. 성장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그때는 못했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중에는, 추워서 큰 고생을 하기 전에 제때 장갑을 꺼내어 끼는 것(놀랍게도 난 그걸 올해에 와서야 제대로 해낸 것 같다)처럼 사소한 것도 있고, 아주 근본적이어서 내 삶의 전반에 걸쳐 도움이 되는 것도 있다. 오늘은 그 후자에 속하는 것 중 하나를 적어보려고 한다.
사람에게 감정은 왜 존재할까? 감정을 가지는 건 생존에 유리하다. 공포는 우리를 위험에서 도망치게 하고, 분노는 위협에 맞서 싸우게 한다. 희망은 우리가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며, 사랑과 공감은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고 집단생활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감정이 항상 유용한 방향으로 작용하지만은 않는다.
감정이 일을 망칠 때가 있다.
너무 기쁠 때, 사실 그건 뭐 큰 상관 없다. 그만큼 좋은 일이 있다는 건데, 다른 건 좀 망치면 어때. 그만한 기쁨은 빈도가 높지 않고 지속시간도 짧으니까 그냥 만끽하면 될 것 같다.
문제는 반대의 경우다.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지배할 때. 좋지 않은 일을 이미 한 번 겪었음에도 거기서 파생한 감정 때문에 다른 일까지 연쇄적으로 망치게 생겼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잠깐 동안만 감정을 느끼지 않는, 오로지 이성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로봇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가능할리가. 감정이 드는 건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건 그 감정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세월이 흐르면서 정립한, 내가 감정에 대처하는 매뉴얼은 다음과 같다.
먼저 기간을 보자. 당신의 감정은 생겨난지 얼마나 되었는가?
1.
방금 생겨난 거라면 쉽다. 순간적으로 드는 감정은 그만큼 빠르게 사그라든다. 예를 들어, 분노는 그것을 유발하는 생체 화합물이 생성되고 다시 사라지기까지 90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별 전략이 필요 없다. 1-2분 가량의 골든타임만 버티면 된다.
그 짧은 시간 동안만 감정이 주도하는 말과 행동을 삼가자.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은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해서, 자신은 책상에 2분과 5분짜리 모래시계를 두고 중요한 결정을 실행하기 전 시계를 뒤집어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 동안 감정이 배제되고, 많은 결정들이 바뀐다고. 그걸 인상깊게 보고 나도 다이소에서 3분짜리 양치용 모래시계를 하나 사서 책상에 올려두었다. 그걸 뒤집을만큼 격정적인 순간은 다행히 아직 없었지만.
2.
오래도록 빌드업되어왔거나 지속되는 감정, 이건 좀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2.1.
우선 감정의 원인을 찾는다. 나는 지금 왜 기분이 나쁜가? 식별에 성공했다면, 그 원인으로 인해 이 정도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정당한지 따져본다. 본인의 감정에 정당성을 따진다라, 사이코패스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건 실로 큰 도움이 된다. 따져보고 나면 그렇게 대수로운 일이 아니거나, 심지어는 별 이유가 없는 경우도 놀랍게도 꽤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엔 전자는 남에 대한 실망, 후자는 우울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 같다. 이 단계를 통해서 정당성이 없음을 밝힌 감정은 이제 몰아내기가 비교적 쉽다.
2.2.
나름의 이유가 있는 감정을 다루는 다음 단계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내 태도는 바꿀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reframing이라고 부른다. 가령 어떤 학회에서의 발표를 시원하게 말아먹었다면 이를 실패로 여기고 좌절에 빠져있기보다는, 부족한 점을 채우고 다음에 더 잘 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면 당장의 기분이 나아질뿐만 아니라, 이번 실수를 다각도로 분석, 기록하고 미래를 더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3.
여전히 부족한가? 그럼 이제 적극적으로 싸워라. 감정을 물리칠 수 있는 능동적인 활동을 몇 개 식별해놓고 기분이 나쁠 때마다 그걸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이 활동은,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러니까 취미 같은 것과는 맥락이 약간 다르다. 그런 것들은 한 구석에서의 기분을 끌어올려 다른 구석의 저하된 감정을 중화할 수 있고,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행동들은 저하된 바로 그 구석의 무드 자체를 0에 가깝게 되돌려놓을 수 있는 것들이다. 각자에게 효과적인 행위는 모두 다를 것이다. 내게 효과적이었던 방법을 몇 개 소개하자면:
-
수면
깊은 밤 드는 많은 상념들을 높은 확률로 타파할 수 있다. 그러니까 시간이 늦었으면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디비 자자. -
유산소 운동
얇고 길게 할 수 있는 운동, 바깥 풍경을 보며 할 수 있는 것들이라면 더욱 좋다. 야외 러닝, 자전거 타기 같은 것들. 개인적으로 무산소운동은 감정 조절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 영화 시청
- 악기 연주
쓰다 보니까 방금 깨달은 건데, 나열한 모든 활동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수면은 뭐 당연하고, 유산소 운동 중에는 호흡과 페이스를 조절하느라, 영화를 시청할 때는 주인공의 상황에 이입하느라, 악기 연주는 한 음도 틀리지 않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그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태를 최소 수십 분간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감정을 상하게 했던 일과는 강제로 얼마간 분리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행위들은 회복의 기능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2.4.
하지만 이 모든 단계를 거치고도 통제되지 않는 감정은 어떻게 할까? 이제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
이기적으로 생각해보자. 이러고 있는 것이 내게 득이 되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세상이 날 억까하는 게 맞고, 긍정적인 부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숙면과 러닝 정도로는 극복되지 않는 감정을 남기는 일들. 하지만 그런 일을 겪었다고 평생을 좌절과 냉소주의에 빠져 지낼 것인가? 그건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절망적인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움직이는 것이다.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사람이 결국은 승리하는 개체다.
이 마지막 비기를 매뉴얼에 추가한 것은 어느날 내게 추천된 유튜브 영상을 보고 나서였다. 아래 퍼온 그 영상을 여러분도 꼭 한번 보길 바란다. 1분짜리 영상을 보고 인생이 바뀐다? 그런거 난 잘 믿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상은 내 인생을 바꿨다. 송두리째는 아니어도, 앞으로 살아갈 긴긴 세월 동안 맞닥뜨릴 수많은 시련을 극복할 수 있도록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반복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건 실패밖에 없을 때, 내 자신이 자꾸 시니컬해지려고 함을 느낄 때, 나는 항상 코난의 말을 떠올린다.
이런 매뉴얼이 없던 불과 몇 년 전의 나를 떠올린다. 참 어렸다. 별거 아닌 일에 삐지고, 딱히 이유도 없는데 우울에 빠져서 거기에 소용돌이처럼 휘말려 들어가기도 했다.
이제는 많이 노련해졌다. 웬만한 일로는 감정이 잘 상하지 않는다. 아니, 상해도 금방 되돌릴 수 있다. 항목 2.4까지 가야 하는 일이 얼마 전에도 있었다. 게다가 2.3 능동적인 활동도 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었어서 꽤나 위태했는데, 2.4를 떠올리니 극복할 수 있었다. 이 매뉴얼을 세우고 나서 극복하지 못한 일은 아직 없다.
이러다 보니 요새는 오히려 반대의 고민이 (아주 약간) 생겼다. 인생이 재미가 없다. 더 구체적으로는, 삶이 역동성을 많이 잃어버렸다. 연구하고, 이런 글을 쓰는 일상 속의 즐거움은 아직도 유효하지만 과거에 존재하던 많은 변수들로부터 비롯되던 재미는 많이 줄어들었다. 뭘 더 얼마나 건강해져보겠다고 탄산음료도 끊은지 2년쯤 되었다(이로써 술 담배 커피 탄산음료 등 그 어떤 기호식품도 소비하지 않는 노잼 인간이 되어버렸다).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감정기복도 크지 않은 사람, 그게 내가 추구하는 이상이긴 했는데 정작 그걸 달성하고 나니 이게 잘 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아이러니. 처음에는 이리로도 구르고 저리로도 구르다가, 나중에 가서는 조금씩의 움직임으로 결국에는 안정적인 지점에 도달하는 stochastic gradient descent처럼 원래 인생이 그냥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여튼 난 이런 삶을 살고 있으니, 여러분이 이따금씩 내 인생에 등장해 변수가 되어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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