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i
저번 가을에 교환학생 파견이 확정되고 친구들과 생활 계획을 세우면서, 매 주말은 꼭 근교 도시들로 여행을 가보자고 했었다. 하지만 어떤 주는 비가 내려서, 어떤 주는 귀찮아서 점점 미루다 보니 두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다녀온 곳은 툴루즈에서 70km 정도 떨어진 알비Albi 하나뿐이었다.
알비는 방문하는 사람에 따라 여행에 적합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볼거리라 하면 오래된 다리를 낀 강가의 풍경과 거대한 성당, 정육면체 모양으로 괴상하게 가지를 친 나무 정도인데, 나는 종교를 믿지 않아서 성당도 크게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의외의 곳에서 알비의 가치를 찾았다. 여느 도시가 그렇듯 알비에는 강이 흐르고 그 강은 한 호수 주위로 가장 심하게 휘는데, 그 호수 주변으로 있는 공원이 바로 그곳이었다. 사실 공원이라고 하기도 뭐한 게 호수 주변으로 사람들이 다니다 다져진 길과 몇몇 피크닉 테이블이 사람의 흔적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이 포인트다. 이것이 공원이라고 만든 곳인지 아니면 자연 그대로인지가 헷갈릴 정도의 환경.
내가 간간이 올리는 스토리를 보아온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혼자 쏘다니는 걸 상당히 좋아한다. 빌딩숲, 시장, 강가 등 도시에 가볼만한 곳은 많지만 공원은 그중에서도 단연 나의 베스트픽이라서, 새로운 지역에 머물게 되면 한 공원에서 다음 공원으로 도장깨기 하듯이 다니곤 한다. 이러다 보니 난 공원에 대한 나만의 독특한 지론을 갖게 됐다.
한국에 있는 공원들을 보면, 도시를 계획하는 높으신 분들은 풀과 나무를 갈아엎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느낌이 든다. 평지는 전부 보도블럭 아니면 우레탄으로 덮고 거꾸리 같은 생활체육 기구 몇 개를 올려놓으면 그게 공원이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께는 이런 시설이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겠지만, 녹음이 우거진 공원도 우리에게는 꼭 필요하다. 집이나 학교에 있다가 가끔씩 좀 멀리 떠나서 숲에서 각종 식물과 곤충을 만나게 되면 무척이나 반갑다. '세상에는 이런 것도 있는데 내가 그걸 까마득하게 잊고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린 시절 화단이 딸린 집과 넓은 호수공원 덕에 자연을 배울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공원이라곤 우레탄 바닥밖에 없는 도심에서 그것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느낌이 더욱 아득하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라 알비의 공원은 내게 마치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알비에 같이 간 친구들은 고맙게도 나와 성향이 비슷해서 우리는 호숫가에 돗자리를 깔고 한 시간 정도를 그곳에 있었다. 물에 반쯤 잠긴 통나무, 우거진 수풀과 그 사이를 유유히 떠가는 오리, 물에 들어갈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 결국은 첨벙하고 빠져버리고 마는 강아지와 그걸 지켜보는 주인까지 가만히 앉아 그곳에서 조용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있는 건 분주하게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것 못지않게 재미있었다.
그때는 아직 날씨가 쌀쌀해서, 여름이 가까워지고 초록이 더욱 짙을 학기 말쯤 이곳에 다시 와보자고 얘기했었는데 그러지 못해 조금은 아쉽다.
프랑스 교환학생기 Ep4
원본: 2020년 6월 3일 인스타그램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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