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E-SUPAERO의 기숙사
ISAE-SUPAERO의 기숙사는 KAIST보다 4배가량 비쌌다. 상대적으로 높은 프랑스의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결코 낮지 않은 가격이었다. 1인실에 화장실까지 딸려있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었지만, 변변치 못한 난방과(가서 한 2주는 후드집업에 경량패딩까지 껴입고 잤다) 다른 동에까지 가야 있는 세탁실을 생각하면 좋은 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기숙사에 큰 불만을 품지 않았던 건 바로 공용주방의 존재 때문이었다.
국적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호실 배정 시스템 덕분에 식사 시간 즈음에 주방에 가면 언제나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하는 요리와 말을 보고 들으며 이 사람은 어디에서 왔을까, 주식은 이렇구나 하고 생각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끔은 그들과 대화도 트면서 캠퍼스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요리하는 것 자체는 더 즐거웠다. 처음에는 레시피를 보고 장을 봐도 꼭 한두 개씩 빠뜨려서 요리할 때 곤란해지기 일쑤였는데, 시간이 지나니 알리오올리오나 김치볶음밥 같이 두어 번 해본 메뉴는 어떤 코너에서 장을 볼지, 동시에 뭘 조리해야 할지 착착 떠올라 일사천리로 만들 수 있었다. 익숙해지는 메뉴들이 하나씩 느는 것이 마치 RPG 캐릭터 레벨을 올리는 것 같이 뿌듯했다. 이러다 보니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에는 어떤 요리를 하면 남은 식재료를 남김없이 먹을 수 있을지 전략을 세울 정도가 되었다.
어느새 6년 차가 된 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걸 직접 해먹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잊고 있었다. 프랑스에서의 생활이 그걸 깨닫게 한 탓에 난 앞으로 요리를 하지 않고는 살기 힘들 것 같다. KAIST에서도 다음 학기부터는 여건이 된다면 자취를 할 듯하다.
프랑스 교환학생기 Ep2
원본: 2020년 5월 18일 인스타그램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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