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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진리
입력 2024.09.20. 11:54 · 수정 2024.09.29. 08:54 · 라이선스
라이선스


때는 스트로크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하던 지난해 10월이었다. 나는 IR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도중에 친구들을 떠나와 대전으로 향했다. 여행 도중에 당일치기로, 한라산에 올라가기 전날에, 그것도 여행보다 늦게 픽스된 일정에 참석하러 중간에 빠진다는 것은 정말로 도리에 어긋나지만, 그만큼 그 미팅은 내게 중요했다. 졸업한 이래로 대외적으로 변변히 내걸만한 어떤 타이틀 없이 창업이라는 미명 아래 살아오던 내 삶에, 이것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계기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 상황을 이해해 준, 여행을 함께 떠난 친구들에게는 아직도 미안하고 고맙다.

미팅은 총합 30분도 안 되어 끝이 났다. 내 발표뿐만 아니라, 질의응답에 이어 투자는 현실적으로 어렵겠다는 즉답을 듣기까지의 모두를 합하여 그랬다. 심사역 분께서 투자가 어려운 이유를 하나하나 말씀해 주시는데 듣는 내 입장에서도 100% 이해가 됐다. 발표와 이어지는 질의응답을 내가 옆에서 제삼자로서 들었다면 나도 투자를 반대했을 것이다. 사실 투자를 받을 이유도 명확하지 않았는데 그저 ‘투자만 받으면 뭐라도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IR을 잡았던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성공할 가능성이 낮은 사업들을 효과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시도해 보길 어언 1년 가까이였다. 그때의 노력을 스스로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 경험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지만, 적어도 덜 주관적인 지금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에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런 시도를 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의외로 사업 아이템이나 그것의 유망한지의 여부가 아닌, 사업의 모든 것을 나 혼자 한다는 점이었다. 정답지는 없고 답해야 할 질문들만 가득한 상황 속에 지쳐가는데 함께 의논할 사람은 없었고, 내 정신 상태가 요동을 칠 때 이를 상쇄해 주며 힘을 불어넣어 줄 사람도 없었다.

소속의 욕구를 다른 어느 때보다 크게 느끼고 있던 이런 상황 속에서, IR을 했던 바로 그 VC에서 들어온 입사 제안을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발표를 한 지 두 달 정도가 지난 12월 그 발표를 들었던 심사역 한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회사에서 새롭게 투자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고, 아이디어를 줄 테니 해볼 생각이 있냐는 말인줄로 처음에는 알았는데, 대면 미팅으로 다시 만나 들은 자세한 이야기는 곧 그 회사에 들어올 생각이 있냐는 물음이었다.

오랜만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기쁨을 누리며, 투자와 재무·회계처럼 내가 생소하게 여겼던 분야의 지식을 많이 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나의 장기적인 목표는 성공적인 창업이므로 3~4개월 정도만 바싹 일하며 열심히 일하고 또 배우고 나와서 그걸 바탕으로 다시 도전을 이어가자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올해 초 나의 첫 직장 생활이 시작되었다. 근무지는 부산 센텀시티였다. 서울에 살던 보통 사람이라면 기겁했겠지만, 뭐 내 역마살이 하루이틀 일이어야지. 새로운 도시를 탐험하는 일은 즐거웠고 덜 추워서도 좋았다. 지난겨울에는 덕분에(?) 눈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일도 즐거웠다. 내가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쌓아놓았던 개발 기술 스택이 회사에서 요구하는 바와 아주 잘 맞았다. 회사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걸 내가 즐겁게 만드는데 돈도 들어왔다! 내가 회사의 유일한 개발자였던 덕에 업무 강도나 형태도 나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과 장기적인 개발 목표 아래 나를 작년 내내 괴롭혀왔던 외로움과 불안이 점점 걷히고 있었다.

그러나 불안이 떠난 그 자리에 이번엔 고민이 들어앉았다. 3~4개월만 회사에 다니고 다시 창업에 도전하자는 그 생각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직장인의 삶에 안주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난 성장하기를 바랐지만 회사 일은 내가 성장하기보단 그간 쌓아놓은 것을 소모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창업 또한, 1년에 가까운 기간을 이미 시도해 본 시점에서 이제는 확실히 성공하지 않는 이상 그 경험들은 더 이상 성장이 아닌 정체, 심지어는 퇴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결국 모든 것은 다음 창업의 성공 가능성에 달려있었고, 그건 높아 보이지 않았다. 회사에서 보았던 수많은 창업팀의 배경, 같은 기간 활동했던 창업 학회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사업에 대해 가졌던 태도, 선발되지 못한 창업지원사업들 등 지난 몇 달간 겪었던 모든 환경과 지표가 no-go를 외치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한 신념이나 인·물적 자원 그중 어느 것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인생의 어느 단계에 이르러 다시 시도한다고 해도,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그럼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새로운 연구를 시도할 수 있는 대학원 진학? 시니어들을 만나 성장할 수 있는 대기업으로의 이직? 사업의 성공을 대리 체험할 수 있는 폭풍 성장 중인 스타트업으로의 이직? 아니면 이 회사에서 야망을 펼치기?

오랜 고민 끝에 진학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았다. 사업에 있어서든 진로에 있어서든 어떤 선택을 내릴 때 느끼는 것은 그 선택의 중요도가 높을수록 그것의 도출을 위한 논리적인 사고는 점점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고려해야 할 점이 너무나 많아서 각자는 정량적으로 계측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논리적으로 하나의 결론으로 종합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게 되면 선택은 개인의 철학과 신념의 몫으로 넘어간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사업을 경영하는 데에 철학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나도 내 철학과 신념을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무엇을 위해서라면 다른 것을 포기할 수 있는가? 창공과 우주가 나에게는 그것이었다. 내가 연구개발에 일조한 어떤 물체가 전인미답의 우주 공간에 닿는 것, 그것을 나는 오래전부터 내 자아실현의 순간으로 생각해 왔다. 그럴 수 있다면 잠을 좀 못 자도, 돈을 좀 못 벌어도 괜찮았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포기한 다른 수많은 선택지에 미련을 두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항공우주공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지인들에게 알리면, 왜 전산(컴공)과로 가지 않았냐는 질문이 돌아오고는 한다. 그 질문을 받은 횟수가 이미 열 번도 넘는 것 같다. 항공과 전산을 모두 전공한 데다가 나의 지난 행적들은 대부분 개발 쪽에 몰려있었으니 아주 자연스러운 물음이다. 그러나 전산 쪽 연구와 웹 개발은 내가 좋아하고 또 잘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일 뿐, 나의 신념에까지 닿아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선택을 내린 이후로 삶은 참 바쁘게 흘러갔다. 우선 진학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은 것은 지난 4월, 가을학기 원서 접수 마감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그 이틀 안에 원서, 자기소개서, 우수성입증자료를 전부 준비해서 보냈다. 마감이 목요일이어서 보통 때 같았으면 회사 다녀오면 시간이 절대 날 수가 없는데, 기가 막히게도 전날 수요일이 국회의원 선거로 인한 공휴일이었다. 하루 종일 해운대 앞에 스타벅스에 죽치고 앉아 자소서를 써 내려갔다.

서류 제출 이후에는 퇴근하면 해운대와 광안리 근처 스터디카페를 전전하며 면접 준비를 했다. 고학년 때부터는 거의 전산과 과목만 들었기에 수강한 지 길면 4-5년 지난 과목들 기억을 떠올리는 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회사 일을 마친 후에 또 공부를 하자니 정말 쉽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래서 면접 당일까지도 준비 상태는 완벽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고, 실제로 면접에서도 똑바로 대답하지 못한 질문들이 많았다.

면접은 5월 중순의 금요일로 잡혀 그날 연차를 쓸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회사가 갑자기 딱 그 주에 일주일 전체 휴가 선언을 하여(!)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 김에 같은 주 월, 화요일에 소속 연구실 결정을 위한 교수님 여러 분과의 면담도 잡았다. 원래는 면담을 주초에 끝내고 남은 시간 동안 충분히 더 준비할 예정이었는데, 운명의 장난인가, 친할아버지께서 화요일에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병환을 앓고 계셨던지라 감정을 완충할 기간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남아있는 감정의 동요 속에 장례식을 치르고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로 면접에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화요일에 뵈었던 교수님 면담부터 금요일 면접까지가 딱 3일인데, 물론 정신·체력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삼일장 전체가 일정이 겹치지 않게 딱 들어맞은 것은 할아버지께서 내 편의를 봐주신 건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6월 중순에 합격이 확정되면서 회사에 퇴사 예정임을 밝혔고 8월 20일에 마지막으로 출근했다. 막간의 시간 동안 가족여행을 다녀오고 9월 초에 개강하여 이제 연구실에 출근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즐겁게 다니고 있다. 교수님은 존경스럽고 인자하시며 연구실 형·동기들은 친절하다. 무엇보다 나랑 결이 잘 맞는 사람들인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교수님을 포함해서 10명대 초반의 인원이 모두 남자인데 또 남고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아니고, 딱 만족스러울 정도로 편한 느낌. 또 일찍 결혼하셨거나 자녀까지 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인생 선배로서 조언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라도 젊고 체력이 좋을 때 결혼해서 자녀를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종종 하곤 하는데, (박사까지 한다는 가정하에) 앞으로의 6년은 내 길이 확정적이라는 안정감과 함께 옆에서 지켜본 연구실 선배들의 모습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전에 이 연구실에서 연구를 해본 경험도 딱히 없다 보니 지원할 때까지도 세부 관심 분야를 확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지도교수가 확정된 이후에 교수님께서 이것부터 한번 해보는 게 어떠냐면서 주제를 하나 던져주셨는데, 지금으로서는 그 주제가 아주 마음에 든다. 앞으로 분명히 우여곡절이 많겠지만, 잘 해낸다면 앞서 말한 내 자아실현의 순간이 이 주제에서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전전 문단에서 (박사까지 한다는 가정하에)라는 단서를 하나 달았다. 물론 내 희망은 앞서 말한 연구 주제가 나와 너무 잘 맞아서, 석사 이후 박사과정까지 자연스레 이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게 내 뜻대로 되리란 법은 없다. 생각지 못한 어려움으로 연구를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위대한 일을 해내려면 죽을힘을 다해야 하는 건 맞지만, 죽을 때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걸 나 자신에게 일러두고 싶다.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석사, 이어 박사를 갔다면 난 이 길밖에 몰랐겠지만 한번 밖을 방황하다 돌아온 지금은 바깥에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걸 안다. 항상 그 세상을 염두에 두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자.


몇 년이 될지 모르지만 결코 짧지는 않을 대학원생으로서의 기간 동안 내가 지녀야 할 태도를 여기 일러두고 글을 마치려고 한다. 이것들은 내가 생각한 인생의 진리이다. 사소하고 당연한 말들을 굳이 그런 거창한 이름을 붙여 여기에 나열해 놓는 것은, 올해 회사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동시에 삶의 다른 부분들에서 마주친 다수의 상이한 상황들에서 이 이치들이 동일하게 작용하는 것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1. 긍정적인 마음가짐. 대부분의 일들은 환경과는 별개로 내가 생각하고 실천하기에 달렸다.
  2. 일관적이고 장기적인 노력(consistency and perseverance). 한방은 없다. (루틴의 확립도 포함)
  3. 솔직함, 친절과 양보.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남의 잘못을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대부분의 갈등은 비교적 쉽게 달랠 수 있다.

이 진리를 따라, 열심히 살아보자.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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