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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
입력 2024.06.11. 06:27 · 수정 2024.06.12. 07:54 · 라이선스
라이선스


나를 봐 내 작은 모습을
너는 언제든지 웃을 수 있니
너라도 날 보고 한 번쯤
그냥 모른척해 줄 순 없겠니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나 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나나 나나나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나나
나나 나나나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나나
패닉 - 「왼손잡이」 중

나는 왼손잡이다.

작년에 대학 테니스 동아리 친구들과 밥을 먹다가, 어쩌다 나온 이야기였는지 내가 왼손잡이임을 밝히게 됐다. 옆에 있던 친구의 즉각적인 반응은 "엥? 거짓말!"이었다. 내가 뭘 얻자고 그런 거짓말을 해ㅋㅋㅋ 했지만 내가 테니스를 왼손으로 치는 것도 아니고, 왼손잡이가 흔치는 않다 보니 충분히 그럴 법도 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각종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중 왼손잡이의 비율은 5%대 정도로 나타난다. 전 세계적으로는 성인 전체의 약 10% 정도가 왼손잡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그 비율이 낮은 것은 선천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교정에 따른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적 풍토의 젊은 세대로 갈수록 왼손잡이 비율이 늘어났고, 양손잡이를 선택지에 포함한 동신대 조사에서 그들이 8% 정도로 집계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출처: 중앙일보 기사

나 또한 선천적으로는 왼손잡이, 후천적으로는 양손잡이다. 아래의 표처럼 행위에 따라 주로 사용하는 손이 상당히 고르게 양분되어 있다. 이 둘을 나누는 비교적 명확한 기준은, 당연하게도 해당 행위의 수행 능력 습득에 있어 타인의 지도를 받았는지 여부이다. 글쓰기와 식사는 부모님께서 의도적으로 오른손으로 가르치셨고 나 역시 별 거부감 없이 배웠다.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둘은 왼손으로 했을 때 불편한 점이 많다. 사회적인 시선(은 뭐 이제 거의 없는 것 같지만)을 제외하더라도 어색한 팔과 손목의 각도, 잉크 번짐, 옆사람과의 충돌 등 기능적인 측면에서.

배우지 않았는데 오른손으로 하는 것도 종종 있기는 하다. 당구공 치기 등.

왼손 오른손
  • 그리기
  • 던지기
  • 핸드폰 조작
  • 교통카드 태그
    (이게 제일 불편)
  • 자 긋기
    (오른손으로 자 잡고 왼손으로 긋기)
  • 수정테이프 긋기
  • 뚜껑 여닫기
  • 책 훑기 (뒤부터)
  • 옷 걸기*
  • 기타
    (못 치지만 친다면)
  • 크로스백 매기
    (가방이 오른쪽에 가게)
  • 소총 견착, 발사
    (초딩 시절 BB탄총 사용 경험에 기반)
  • 쓰기
  • 휘두르기/치기
  • 숟가락·젓가락·포크 들기
  • 양치질
  • 가위질
  • 칼질
  • 큐대로 당구공 치기
  • 권총 발사
    (소총과 사용 경험 동일)
무엇으로 해도 이상하지 않음
  • 농구 슛 (둘 다 못함)
행위에 따라 다른, 내가 주로 사용하는 손

*나는 오른손으로 옷걸이를 행거에서 빼어 왼손으로 옷을 걸고, 결과적으로 옷걸이를 다시 행거에 걸었을 때 옷은 왼쪽을 향하게 된다. 그렇게 하니 옷가게에서는 입었던 옷이 다른 옷들과 반대로 걸리는 경우가 자주 생기길래 이것도 왼손잡이의 습성인가 보다 했는데, 왼손잡이들이 다 그러진 않는 것 같다. 이 말인즉슨 오른손잡이도 나와 같이 거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겠지.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하느라 글씨를 정말 많이 썼고 그만큼 오른손이 단련이 되어, 어느새 그리기도 오른손이 더 편해진 것 같아 내가 아예 오른손잡이로 개종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때 품기도 했었다. 지금도 글에 가까운, 직선이 많이 포함된 그림을 그릴 때는 오른손이 나가게 되는 건 맞다. 그러나 스케치나 붓 터치 등 유연한 스트로크가 필요한 그림은 여전히 왼손이 편하다. 그리고 이렇게 주요한 행위들이나 주 사용 손 분포가 고른 거지, 목록에 담기 어려운 수많은 잡다한 일들은 전부 왼손으로 한다.

왼손으로 글도 쓸 수 있다. 다만 심한 악필에 속도도 매우 느려서, 정말 "쓰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정도이다. 나는 그 정도는 그냥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오른손잡이들이 왼손으로 글을 쓰려고 하면 펜에 힘 자체를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 중학생 때쯤인가, 이런 비교우위를 살려서 아예 양손잡이가 되어보자 하고 일부러 왼손 글쓰기를 연습한 적도 있으나 곧 포기했다. 오른손으로 뻔히 되는 걸 왼손이 못하니까 너무 답답했다. 십수 년 간의 누적 경험은 역시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내가 박명수 씨보다는 잘 쓰는 듯

과거에는 대놓고 박해를 받았고 요즘도 때때로 교정의 대상이 되며 일상생활의 불편함은 명확하지만, 난 내가 왼손잡이인 것이 마음에 든다. 무언가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 왼손잡이가 지능이나 창의력이 높다느니, 위인 중에 왼손잡이가 많다느니 하는 소문들은 다수 연구로써 모두 부정된 것으로 보이지만, 왼손을 주로 사용함으로써 보통 사람들과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보게 되는 점은 분명 간혹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을 훑어볼 때 나는 오른손으로 책을 받치고 왼손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는데, 때문에 내용을 거꾸로 보게 되곤 한다.

한편 거의 유일하게 왼손잡이가 명백히 유리한 분야가 있는데 바로 스포츠다. 타인을 상대해야 하는 운동에서 왼손잡이들은 자주 보기 어려운 공격 패턴을 상대에게 선사해 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대부분의 운동을 오른손잡이인 가족이나 강사님께 배운 탓에 애석하게도 그 이점을 하나도 누리지 못했다. 라켓, 방망이, 스틱 모두 오른손으로 휘두른다. 심지어 야구에서는 보통 우투좌타가 가장 유리하다고들 하는데 난 던지는 건 또 왼손으로 해서 좌투우타다.

대학교 2학년, 테니스 동아리에 막 들어갔을 때에는 이런 아쉬움을 염두에 두고 테니스는 처음부터 왼손으로 치려고도 해봤다. 이전에 테니스를 쳐본 경험은 손에 꼽지만 탁구, 배드민턴 등 다른 라켓을 휘두른 세월이 길어 쉽지 않았다. 결국 이것도 곧 포기했다. 나중에 자식이 왼손잡이라면 운동은 꼭 처음부터 왼손으로 가르쳐야지. 거울모드로 나를 따라하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좋아.

축구는 자식의 성향과는 상관없이 꼭 왼발잡이로 가르칠거다(*나는 오른발잡이다.). ~발잡이는 단지 선택의 문제인줄 알았는데 이것도 선천적으로 오른발잡이 비율이 우세하다네*? 그러나 듣거라 미래의 아들딸아, 너희는 최소 왼발잡이 가능하면 양발잡이가 될거다. 아빠가 왼발을 못 써서 놓친 기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왼발로 차려고 하면 내 모습이 마치 축구 한번도 해보지 않은 5살 아이처럼 되어버리고 마는걸…

*재밌는 건 ~손잡이와 ~발잡이가 어느 정도 상관관계에 있다고 한다.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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