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신부 - 1
봄철에 결혼하는 건 비단 사람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개미들도 5월 중순 정도가 되면 날씨가 맑은 날을 잡아 결혼비행을 한다. 종류에 따라 시기가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일본왕개미의 경우가 그렇다. 그래서 일본왕개미가 많이 서식하고 있는 선유도공원에 이맘때쯤 찾아가면 날개달린 개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요일인 오늘 문득 선유도공원에 가보기로 했다. 사실 이번주는 회사가 통으로 쉬어가서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알기라도 하는지 언젠가는 일어날 예정이었던 개인적인 일들이 이번주에 몰려서 터지는 바람에 평소보다도 훨씬 더 바쁜 한 주를 보냈다. 금요일부로 그 일들은 마무리되었고 토요일인 어제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지만 그동안 쌓인 피로를 푸는 데에 하루를 더 써야만 했다.
그리하여 휴일다운 휴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여유가 오늘에야 오랜만에 주어진 것이다. 그것도 저녁에 부산으로 내려가기 전까지만이지만. 맞다, 오는 5월 27일부터 서울에서 출퇴근을 하게 됐다. 앞으로도 부산에 간간이 출장은 가겠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오는 주까지로서 일단 마무리된다.
이렇게 따뜻하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자유 시간에 밖을 나가지 않는 것이 마치 잘못을 저지르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어디든 나가기는 해야겠는데 지금쯤이면 개미들 결혼비행 시즌이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쳐 선유도공원을 목적지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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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개미의 생태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꽤나 특이한 취향이라 어디 가서 굳이 자세히 말은 안 하지만. 집이 침략을 당하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알부터 챙기는 그들의 모습은 어릴 때부터 내 호기심을 돋우었다. 미국에 그랜드캐니언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보라는 협곡은 안 보고 개미만 보고 있었다는 건 지금도 부모님이 나를 놀리는 주제다. 어릴 때 개미집 한번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나의 경우에는 나이가 들면서도 그 흥미가 지속, 오히려 확장되어 관련 자료를 더 찾아보고 공부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런 확장에는 확실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 소설 「개미」가 한몫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의 추천으로 베르나르의 소설에 입문하게 된 내가 마침내 「개미」를 읽게 된 것은 중학교 1~2학년 즈음이라고 기억한다(그런 나는 수년 뒤 그의 고향에서 그를 직접 만나게 된다!). 방대한 양과 갈수록 철학적이어지는 내용 때문에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완독은 못 했지만, 개미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건 1, 2권만으로도 충분했다.
하굣길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도 특이한 개미 집단의 모습이 보이면 멈춰서서 한참을 구경했다. 일개미와는 다르게 우락부락하게 생긴 병정개미, 안테나를 정리하며 자세를 가다듬는 개미, 거대한 왕개미를 마주친 불개미 등등. 운이 좋게 날개 달린 개미를 처음 봤을 땐 정말 뛸 듯이 기뻤다! 공주개미였는지 수개미였는지 둘 다였는지가 입구에서 모여 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또 한참을 보다가 수학학원으로 부랴부랴 자전거를 탔었다. 학원이 끝나자마자 똑같은 자리를 찾아갔는데 이미 해가 져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때쯤이었을까, 개미를 제대로, 직접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그 퍼런 젤리가 담긴 통에 일개미 몇 마리 잡아넣는 식이 아니라, 여왕개미가 있어서 지속하고 확장할 수 있는 진정한 군체를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보았던 책과 인터넷 카페에는 개미의 군체가 형성되는 과정이 상세히 나와있었다. 공주개미는 결혼비행을 마치고 날개를 떨군 뒤 여왕개미가 되고, 알을 낳은 후에는 그것이 첫번째 일개미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보살피며, 그렇게 탄생한 일개미와 함께 수백만에 이르는 군체로 커가는 것이었다. 그 모든 과정은 마치 건국신화와도 같았다! 신화와 같은 그런 장면을 목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미' 알면 사랑한다>
네이버 카페
결혼비행 시기를 공부하고 때를 기다렸다. 정확히 10년 전, 2014년 5월에 중학교 3학년의 나는 이쯤이겠다 싶어 개미가 많이 보이던 선유도공원을 찾아갔다. 결혼비행은 군체마다 1년에 겨우 한번 정도 있는 행사이므로, 가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돌아오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세상이 내 소원을 듣기라도 한 듯 그 자리에 정말로 여왕개미가, 그것도 여러마리가 있었다! 감격하며 들고온 플라스틱 통에 이들을 주워담고 부푼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뭔가 이상했다. 적당한 크기의 집에 수분까지 알맞게 제공해주었으니 이제 알을 낳아야 하는데, 잡아온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기별이 없었다. 무엇보다 결혼비행이 끝난 여왕개미라면 날개를 떼었어야 하는데 날개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붙어있었다. 그때에 와서야 생각했다: 이 개미들은 날개를 아직 떼지 않은 여왕개미가 아니라 애초에 결혼비행을 하지 않은 공주개미일 수도 있겠구나.
그 추측이 맞았을 거다. 그들은 결국 하나도 알을 낳지 못했다. 날개를 떨군 여왕개미만을 잡아야겠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기며 내 첫번째 시도는 그렇게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곧 고등학교 입시 시즌이었다. 모교인 하나고등학교에 지원할 때 자기소개서를 써야했는데 내 자소서는 다름아닌 개미로 시작했다. 자소서의 뼈대를 구상하며 지난 3년간의 내 행적을 되돌아보는데, 개미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여 채집까지 한 과정이 탐구에 대한 내 열의와 자율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 가서 개미 잡아와."하는 부모가 많지는 않을 것 아닌가?
개미와 관련한 예상 질문까지 뽑아가며 열심히 면접을 준비했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하나도 물어보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다행히 전형에 합격해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고등학교는 기숙사학교로 학생들은 달에 한번씩밖에 귀가하지 않아 학교 안에서 개미집을 발견하지 않는 이상 개미를 채집하기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사실 안에서는 하루하루 사는 게 바빠서 그럴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아, 여름방학 중에 집에 있을 때 동네 뒷산으로 한번 채집을 떠난 적은 있다. 그때는 결혼비행 시즌이 아니니 여왕개미를 채집하려면 바위를 들추거나 통나무를 비틀어 열어보아야 했다. 채집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다만 통나무 속을 휘젓는 붓*에 병정개미들이 쏘아대던 개미산 냄새는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모기든 개미든 산에 사는 애들이 더 사나운 건 마찬가지인가보다.
*손이나 핀셋으로 개미를 잡으려고 하다가는 개미가 다치기 쉽기 때문에 붓을 사용하곤 한다.
채집이 어려운 환경은 개미에 대한 내 열정을 다른 형태로 표출하게끔 만들었다. 관련한 자료를 찾아보며 벌이 개미와 같은 진사회성 동물의 부류에 속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만큼 벌도 복잡한 사회 구조와 생태를 가지고 있었다. 또 한 단계 더 나아가, 먹이의 위치를 전달하는 소통 규칙(=8자춤)까지 갖추고 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 이런 벌들의 특성은 또 한번 내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쪽, 진사회성 동물로 주제를 잡아 여러 과제를 수행하곤 했다. 1학년 때는 벌의 춤과 이를 연구하여 노벨상을 받았던 학자의 삶을 조사하고 정리하여 한 에세이 대회에 출품했다. 3학년 때, 수강생별로 생명과학 안의 주제를 잡아 관련 논문을 읽고 소개해야 했던 방과후수업에서는 아예 개인 주제를 동물행동학으로 잡고 개미와 벌의 행동 양식에 관한 논문을 다수 읽고 소개했다.
그때 읽었던 논문 목록:
- A systems approach to animal communication
- The role of multiple pheromones in food recruitment by ants
- Sibling conflict and dishonest signaling in birds
- The Drosophila pheromone cVA activates a sexually dimorphic neural circuit
- The mixed-species chorus as public information: Túngara frogs eavesdrop on a heterospecific
- Hydrocarbons Emitted by Waggle-Dancing Honey Bees Increase Forager Recruitment by Stimulating Dancing
- Distributed nestmate recognition in 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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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위해 개미와 관련한 나의 기록들을 다시 쭉 찾아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나조차도 잊고 있던 기록들이 너무나 많았다. 내가 개미에 이렇게나 심취해있었단 말인가? 이 뒤에 이어질 내용은 내가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이야기인데 그것만 해도 산더미다. 이미 글이 길어 그건 다음 2부로 이어 적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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