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누도 고양시
얼마 전에 어떤 주제로 이야기하다 나왔는지, 부모님께 흥미로운 사실을 들었다: 전남도청이 과거 광주에 소재했다는 것. 과거에 그랬다는 사실의 단순 전달이었는지 아니면 지금도 그런지에 대한 의문 제기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건 내겐 의외였다. 내가 태어난 때부터 항상 광주는 광역시로서 전라남도와 같은 광역자치단체 레벨에 있었고, 과거를 따지기에도 전라남/북도청은 전라도의 이름이 유래한 전주나 나주에 있는 편이 더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듣고보니 광주는 근대에 전주나 나주를 능가하는 체급에 있었으므로 혼자 광역시로 승격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승격 직전까지는 광주에 전남도청이 속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부모님의 말씀대로 전남도청의 과거 소재지는 광주였고, 지금은 무안에 위치한다. 비슷한 양상이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났다. 알아보니 인천광역시와 울산광역시를 제외한 나머지 네 개 광역시 모두가 한때 자신이 지리적으로 속한 도의 도청 소재지였고, 해당 도청들은 시의 승격 이후 각각 관내의 다른 도시로 이전됐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나는 이것이 마치 경기도청이 한때 서울시내에 있었다는 말처럼 들려 느낌이 이상했고, 이런 나를 보고 부모님께서는 세대차이를 느낀다고 하셨다.ㅋㅋ
부모님이 나와 이야기하듯 내가 미래 세대와 이야기한다면 거리감을 느낄 요인이 될만한 행정구역 수정이 요새도 일어나고 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에도 변화들이 있었는데 그중 내가 살던 지역에 적용된 건 고양시 일산구의 일산동구+일산서구로의 분구 정도. 주민등록초본을 떼니 거기 기입되어있더라.
그런데 이 정도로는 사소하고, 이와는 비교도 안 될 큰 변화가 눈앞에 있는데 바로 경기북도의 신설이다. 경기도를 남북으로 분도하며 남쪽은 그대로 경기도로 부르고 북도를 새로 두자는 것이다. 경기도 전체 인구, 그리고 서울이라는 메가시티로 인한 분단을 보았을 때 아주 이상한 제안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명칭이다. 경기북도, 본딧말 경기북부특별자치도는 가칭이고 정식 명칭이 되기도 어렵다. 두 글자로 줄였을 때 경상북도와 구분할 수가 없기 때문. 그래서 새로운 이름을 위한 공모전을 열고 오늘 그 결과가 나왔는데 결과를 두고 대단한 논란이 일고 있다. 대상 수상작이 '평화누리특별자치도'인데 이걸 구글에 그대로 치기만 해도 불만이 한 바가지니 논란의 내용을 더 서술하지는 않겠다.
웹사이트나 앱의 UI가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될지라도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거부감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행정구역 이름도 너무나 익숙해서 사실 그걸 무엇으로 바꾼다고 한들 여론이 좋았을 것 같지는 않다. 다른 도들이 명명된 방식처럼 주요 도시 머리글자만 따서 지었어도 중박은 쳤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는데, 경기북도에 속할 시들 중 상위 2개 시인 고양시와 남양주시를 따면, 고남시? 똑같이 낯설었을 것이다.
다만 그걸 감안해도 앞으로 익숙해지기는 여전히 어려울 것 같다. 평화누리특별자치도, 줄이면 평누도. 내 고향이 평누도 고양시가 된다고? ㅋㅋㅋㅋ뭔가 많이 웃긴데.
경기북도가 경북과 겹쳐서 문제라면 차라리 경기는 유지하되 다른 구분자를 쓰는 것이 어떨까도 싶은데. 남북 말고 상하를 쓴다면⋯ 경기상도를 줄이면 또 경상도가 되네. 또 북쪽이 위인건 누가 정했냐면서 남반구 사람들이 따지려나? 경기일도와 경기이도로 구분하기에도 누가 일도가 될 것인가 하는 논란이 있겠지? 아니면 남북 모두 '경'을 떼고 이미 수도권의 의미를 지닌 '기畿'만 유지하면서 기남도, 기북도? 남북 모두 경기라는 이름을 버림으로 인한 행정 비용이 크려나. 쉽지 않은 문제임은 분명해보인다.
공모전 결과로 명칭이 완전히 확정되지는 않은 것 같고, 아직 다른 이름으로 변경될 여지도 있어보인다. 어떤 이름으로 정해지든, 다소간의 거부감을 지닌 기간을 지나 결국에는 모두가 익숙해지겠지. "경기도랑 XX도가 원래 하나였다고요?"라며 누군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묻는 날도 올 것이다.
고향 이야기를 하다보니 함께 드는 생각.
어떤 도시는 고풍스러운 멋을 뽐내며 늙어가고, 어떤 도시는 달리 대책이 없어 늙어간다. 어떤 곳은 금세 갈아엎어지고 새 도시가 되기도 한다.
다른 도시는 몰라도 자신의 고향만큼은 옛 모습을 유지하며 오래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고향인 일산은 어느새 서른 살을 넘긴 도시가 되어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하겠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살던 강선마을 14단지가 고양시 최초로 리모델링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지난해 초 시공사 선정까지 마쳤다고 한다. 분담금 등의 문제 때문에 갈등이 빚어져 이후 진행이 더딘 것 같긴 한데, 리모델링이든 재건축이든 언젠가는 이루어질 분위기다.
나는 유년기를 아주 행복하게 기억하고 있고 내가 일산에 살았던 것이 그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적당한 규모와 연식의 아파트 단지, 그 안에 작은 화단이 딸려 있던 1층집. 걸어서 5분 거리의 학교, 풀과 나무를 좋아하는 내가 어린 나이에도 혼자 찾아갈 수 있었던 바로 앞 호수공원.
그런 일산을 두고 중학교에 입학하며 서울로 이사를 와야 했던 초반에는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서울에서도 금방 적응은 했지만 행복한 기억은 남아 먼 거리를 혼자 오갈 정도가 된 고등학생 때는 혼자서도 몇번씩 귀굣날* 이른 시간에, 아니면 방학에 일산에 들렀던 기억이 난다. 운전면허를 딴 이후에는 부모님 차를 끌고 다녀오기 시작했고 지금도 일산은 내가 가장 즐기는 드라이빙 코스 중 하나다.
*우리 고등학교는 학기 중에 달에 한 번씩만 주말에 학생들을 내보냈고 그 주말 끝에 학교로 돌아오는 일요일을 귀굣날이라고 불렀다.
그런 일산에 우리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 바뀌면 솔직히 많이 섭섭할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나,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여야지. 그 전까지 더 많이 방문하고 더 열심히 눈에 담아두어야겠다.
근데 나 몇 년 전에 부모님 골프연습장 따라가서
채 휘둘러봤는데 공 맞히지도 못하던데
이때는 어떻게 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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