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 말을 요새 자주 떠올린다.
이름을 남기고 싶다. 나를 개인적으로 알던 사람들에게는 덕성이 훌륭했던 사람으로, 모르던 이들에게는 세상을 이롭게 한 공학자·기업가·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다.
동시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는다. 이 땅을 거쳐간 천몇억의 인간 중 당신이 이름을 기억하는 자는 몇이나 되는가.
얼마전, 문득 요절한 가수의 노래에 빠져 며칠 동안 그것만 들은 일이 있었다. 그 가수는 결혼을 한 적이 없고 자녀도 없었다. 생물학적으로 보았을 때 어떤 개체의 가장 큰 성공은 자신의 유전자 혹은 그것과 유사한 것을 세상에 아주 많이 남기는 것이다. 반대로 자손을 남기지 못한 개체는 실패한 개체다. 생물학적으로 보았을 때, 그 가수는 실패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그가 세상을 뜬지 꽤 된 이 시점에도 그의 노래를 듣는다. 그의 창작물은 그가 죽은 후에도 남아 수많은 이들에게 소비된다. 우리는 그의 노래로 위로받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름을 남긴다"는 표현으로 압축되는, 나와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이들이 세상을 더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 그것 또한 고차원적인 관점에서는 나의 유전자를 남기는 방법 중 하나다. 직접 생식하는 일만큼 정밀한 복사는 아니어도, 훨씬 더 많은 개체로서, 영원히 남길 수 있다.
이제 생식은 유전자를 남기는 많은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 현대 국가들이 변모하는 모습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국가의 최종적인 형태는 같은 인종이 아닌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합이다. 인종으로 그어지던 국가 간의 경계는 세계화로 인해 희미해지고, 이제 사상과 이념이 사람들을 한데 묶는다. In God We Trust, 미국은 그 독특한 배경으로 인해 이 궁극의 형태에 가장 먼저 다가선 나라가 되었다.
가치관을 통한 결속은 때로는 피로 쓰여진 그것보다 더 강력하다. 사람들이 인종은 다르지만 같은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누군가와 편을 먹고, 같은 인종의 사람과 맞서고, 심지어 총을 겨누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다. 유전자의 보존을 제1법칙으로 하는 진화생물학만으로는 이러한 행위를 설명하기 어렵다. 아니면 유전학 연구가 언젠가 극에 달하면, 염기서열에 담기기에는 너무나도 추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인간의 가치체계가 알고보니 DNA에 광범위한 패턴으로서 새겨져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내가 지지하는 이념의 집단이 번성하는 것도 내가 아들딸을 낳는 것만큼 정말로 생물학적으로 성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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