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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화'에 대해 요즘 내가 가진 생각들을 앞으로 몇 개의 글로써 풀어보고자 한다. 이건 그 시리즈의 첫 글이다. *** 지난 1월부터 회사에 다니고 있다.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액셀러레이터 회사다. 지난해 말 창업 아이템의 투자 유치 목적으로 처음 접촉했다가 인연이 이어져 입사까지 하게 됐다. 사내에서 나는 회사의 주 업무, 그러니까 투자 심사와 사후 관리 등을 직접 수행하기보다는 그런 업무를 일부 자동화하고 보조함으로써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도구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을 한다. 내 지난 경험들과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직무를 수행하면서 한편으로는 전혀 몰랐던 투자 프로세스를 새로이 알아가자는 것이 입사 당시의 내 의도였고 그게 꽤나 맞아떨어진 덕에 일은 재미있다. 하지만 동시에 단점도 분명 존재하는데, 사내에서는 연구개발 인력이 나뿐이다보니 기술적인 의견을 교환할 사람이 없어 외롭고, 또 그런 의견교환을 통해 더 빠른 성장을 도모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다. 풀타임으로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지난 인생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씀씀이도 덩달아 커졌는데 절대적으로 대단한 수치를 찍은 건 아니고 작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사실 작년에 창업을 시도한답시고 변변한 벌이 없이 한 해를 통으로 보내면서 내 소비 심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위축되어있었다. 소비 심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절대적인 은행 잔고보다는 지금 들어오고 나가는 순수입/지출이더라.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버는 건 없이 쓰는 족족 마이너스니 정말 지난해말에는 나가서 밥 한끼 사먹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안정적인 수입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 심리는 금세 회복됐다. 더불어 최근에는 더 다양한 소비재에 관심이 생겨(이건 재화 시리즈의 이어지는 글에서 상술할 것이다) 돈이 나갈 구멍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회사에 묶여있는 시간 동안은 소비가 제한되고 또 충동적으로 소비하는 종류의 사람도 아니다 보니 지출은 아직 적당한 범위에 머물러있다고 (스스로는)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 ext{태어난 이래 최대 수입}) - ( ext{그만큼 늘어나지는 않은 지출})$$ $$ = ( ext{태어난 이래 최대 저축})$$ 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그러다보니 자산 관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성인이 되어 자산을 자주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이래로 항상 내 포트폴리오에서는 예금·적금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해왔다. 이외에는 주식과 펀드를 각각 몇 달 정도씩 시도해봤던 게 다이니 예·적금이 거의 전부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주식을 하던 중에는 거기에 자산의 절반 가까이가 들어가있던 때도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 회복장에서 평가금을 조금 불리며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있다가 하락장에서 두드려맞고 약간의 합산 순손해를 보며 전량을 매도하고 끝냈었다. 멋모르고 들어갈 판이 아니라는 걸 적당한 교육비를 내고 배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후에는 모든 예수금을 다시 돌려서 예금으로 예치하고 있다. 그리고 수입이 들어오면 단지 그중 최대한 많이, 최대한 빨리 최대한 금리가 높은 예금에 넣는 것만을 행동강령으로 삼았다. 다음 수입은 언제이며 그때까지 나는 얼마를 쓸까, 그럼 지금 얼마까지 넣을 수 있을까를 추산해보면서. 많은 예금에 긴급출금 기능이 생기고 최근에는 개인 신용카드도 발급받으면서 그 고민은 많이 줄기는 했는데. 이번에 K패스 되는 걸로 현대카드를 재발급받았는데… 너무… 못생겼어… 애플페이 아니었으면 탈주했다 +고 생각했는데 쓰다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세상에 저축을 하는 방법이 예금에 예치하는 것밖에 없다면 이보다 좋은 방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금리 상승은 멈췄으며, 자산이 늘어남은 서로 다른 수익률로 인한 수익 차이 또한 커짐을 의미하므로 예금이 아닌 더 고수익률의 무언가도 함께 들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또 무턱대고 주식을 시작할 수는 없고, 따로 공부를 한다 해도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태로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유튜브에서 눈길을 잡아끄는 썸네일을 보게 되었으니… 이하 모든 썸네일 클릭하면 영상으로 이어집니다. '어? x될순 없지.'라는 생각과 함께 홀린 듯이 들어가 영상을 시청했다. 상당히 긴 길이임에도 한번에 다 보았고, (다분히 의도되었겠지만) 훨씬 위안이 되는 제목의 다음 화, 그리고 훨씬 이전에 업로드되었던 관련 영상까지도 열심히 시청했다: 도합 한 시간이 넘는 영상들을 모두 보고 내가 얻은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투자에 대한 지속적인 학습와 실행의 필요성에 대한 환기. 스포 아닌 스포를 하자면, 영상에서 자산을 100%의 확률로 압도적으로 불릴 수 있는 마법은 소개되지 않는다. 단지 가장 많은 돈을 가장 빠르게 넣어 복리의 효과를 최대한 누리고, 분산투자를 통해 원금 손실의 위험을 줄이라는 조언뿐. 조언이라고 하기도 뭐한게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전자는 내가 예·적금에 대해 이미 가지고 있던 행동강령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성인쯤 된 사람에게 대부분의 문제의 해결은 인지보다는 실천의 여부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 영상은 그 실천을 이끌어낼만한 좋은 촉진제인 것이다. 둘째, 약간의 지식 습득과 앞으로의 학습 방향 설정. 과거의 나는 분산투자를 정말 유명한 격언 그대로 여러 계란 바구니, 그러니까 다수의 상품에 자산을 배분하라는 정도로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자산을 섞어 수익률은 비슷하게 유지하며 위험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영상을 보며 그 개념을 조금 더 구체화했으며, 이걸 포트폴리오 이론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론을 적용한 간단한 예시도 따라가보았다. 이론의 이름을 알았으니 이제 이를 더 깊게 공부하고, 더 많은 예시를 찾아볼 수도 있게 되었다. 당장 유튜브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MIT OpenCourseWare의 <포트폴리오 관리> 강의 가 피드에 뜬다. 너무나 유용했다. 이 시리즈에 깊은 감명을 받아 다른 강의들도 마저 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열 개 좀 안 되게 본 것 같은데 하나하나 주제 선정이 너무나 훌륭하다. 주택청약과 금리, 국민연금 개혁, 고물가의 원인이 되는 산업구조 분석 등등. 이 시대와 나이에 알아야 할 것, 주시하고 있어야할 것, 실천해야 할 것 그리고 고등학생 때 경제 수업을 들으면서 '이런 건 왜 교육과정에 없지?'했던 것 이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느낌이다. 특히 가장 최근에, 연말정산에 관한 영상이 올라왔을 때는 정말 감동받았다. 소득세 신고의 달에 맞추어 기획한 영상인 듯한데, 바로 작년 이맘때에 2년 동안 미루어두었던 소득세를 신고하며 아찔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근로소득 사업소득 기타소득 등 다양한 소득 종류와 각종 공제, 이 모두를 아우르는 몇 십 개에 달하는 신고서 항목들을 들여다보면서 진짜 머리가 깨지는 줄 알았다. 다행히 깨먹지는 않고 많은 걸 배우면서 같은 상황의 친구들을 돕기도 했었다. 나도, 친구들도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며 '이걸 설명해주는 과외 선생님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마치 그 생각을 읽은 것마냥 이 영상이 올라온 것이다. 아직 본 영상을 보지는 못했다. 영상 업로드 주기가 짧아서 연말정산 이전에도 아직 볼 영상들이 산재해있다. 이렇게 유익한 콘텐츠를 공장처럼 찍어내는 슈카월드에게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다. 하나의 사업체로서 수익도 잘 내고 있겠지만, 그보다 훨씬 큰 사회적인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나는 슈카월드로부터 마치 성심당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슈카월드 코믹스를 보며 느낀 깊은 감동을 기록함과 동시에 이를 통해 여러분도 영상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 정말 강력 추천한다. 영상 대부분의 조회수가 100만에 근접 또는 상회하니 이미 본 이들도 꽤 많을 거라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위의 '지금 안하면 x되는 거야' 영상부터 바로 시작해보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내 미래의 배우자는 이런 자료를 보고 배우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면 좋겠다, 라고까지 생각했다. 배움의 기쁨을 공유하고, 각자가 모르던 지식이 있다면 서로 채워주며, 배운 것을 통해 미래의 가정을 안정적으로 꾸려나갈 방안에 대해 건설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관계를 맺고 싶다. 하지만 일단 배우자는 둘째 치고 연인부터…
2y ago · #수필

얼마 전에 어떤 주제로 이야기하다 나왔는지, 부모님께 흥미로운 사실을 들었다: 전남도청이 과거 광주에 소재했다는 것. 과거에 그랬다는 사실의 단순 전달이었는지 아니면 지금도 그런지에 대한 의문 제기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건 내겐 의외였다. 내가 태어난 때부터 항상 광주는 광역시로서 전라남도와 같은 광역자치단체 레벨에 있었고, 과거를 따지기에도 전라남/북도청은 전라도의 이름이 유래한 전주나 나주에 있는 편이 더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듣고보니 광주는 근대에 전주나 나주를 능가하는 체급에 있었으므로 혼자 광역시로 승격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승격 직전까지는 광주에 전남도청이 속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부모님의 말씀대로 전남도청의 과거 소재지는 광주였고, 지금은 무안에 위치한다. 비슷한 양상이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났다. 알아보니 인천광역시와 울산광역시를 제외한 나머지 네 개 광역시 모두가 한때 자신이 지리적으로 속한 도의 도청 소재지였고, 해당 도청들은 시의 승격 이후 각각 관내의 다른 도시로 이전됐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나는 이것이 마치 경기도청이 한때 서울시내에 있었다는 말처럼 들려 느낌이 이상했고, 이런 나를 보고 부모님께서는 세대차이를 느낀다고 하셨다.ㅋㅋ 부모님이 나와 이야기하듯 내가 미래 세대와 이야기한다면 거리감을 느낄 요인이 될만한 행정구역 수정이 요새도 일어나고 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에도 변화들이 있었는데 그중 내가 살던 지역에 적용된 건 고양시 일산구의 일산동구+일산서구로의 분구 정도. 주민등록초본을 떼니 거기 기입되어있더라. 그런데 이 정도로는 사소하고, 이와는 비교도 안 될 큰 변화가 눈앞에 있는데 바로 경기북도의 신설이다. 경기도를 남북으로 분도하며 남쪽은 그대로 경기도로 부르고 북도를 새로 두자는 것이다. 경기도 전체 인구, 그리고 서울이라는 메가시티로 인한 분단을 보았을 때 아주 이상한 제안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명칭이다. 경기북도, 본딧말 경기북부특별자치도는 가칭이고 정식 명칭이 되기도 어렵다. 두 글자로 줄였을 때 경상북도와 구분할 수가 없기 때문. 그래서 새로운 이름을 위한 공모전을 열고 오늘 그 결과가 나왔는데 결과를 두고 대단한 논란이 일고 있다. 대상 수상작이 '평화누리특별자치도'인데 이걸 구글에 그대로 치기만 해도 불만이 한 바가지니 논란의 내용을 더 서술하지는 않겠다. 웹사이트나 앱의 UI가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될지라도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거부감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행정구역 이름도 너무나 익숙해서 사실 그걸 무엇으로 바꾼다고 한들 여론이 좋았을 것 같지는 않다. 다른 도들이 명명된 방식처럼 주요 도시 머리글자만 따서 지었어도 중박은 쳤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는데, 경기북도에 속할 시들 중 상위 2개 시인 고양시와 남양주시를 따면, 고남시? 똑같이 낯설었을 것이다. 다만 그걸 감안해도 앞으로 익숙해지기는 여전히 어려울 것 같다. 평화누리특별자치도, 줄이면 평누도. 내 고향이 평누도 고양시가 된다고? ㅋㅋㅋㅋ뭔가 많이 웃긴데. 경기북도가 경북과 겹쳐서 문제라면 차라리 경기는 유지하되 다른 구분자를 쓰는 것이 어떨까도 싶은데. 남북 말고 상하를 쓴다면⋯ 경기상도를 줄이면 또 경상도가 되네. 또 북쪽이 위인건 누가 정했냐면서 남반구 사람들이 따지려나? 경기일도와 경기이도로 구분하기에도 누가 일도가 될 것인가 하는 논란이 있겠지? 아니면 남북 모두 '경'을 떼고 이미 수도권의 의미를 지닌 '기畿'만 유지하면서 기남도, 기북도? 남북 모두 경기라는 이름을 버림으로 인한 행정 비용이 크려나. 쉽지 않은 문제임은 분명해보인다. 공모전 결과로 명칭이 완전히 확정되지는 않은 것 같고, 아직 다른 이름으로 변경될 여지도 있어보인다. 어떤 이름으로 정해지든, 다소간의 거부감을 지닌 기간을 지나 결국에는 모두가 익숙해지겠지. "경기도랑 XX도가 원래 하나였다고요?"라며 누군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묻는 날도 올 것이다. ⋮ 고향 이야기를 하다보니 함께 드는 생각. 어떤 도시는 고풍스러운 멋을 뽐내며 늙어가고, 어떤 도시는 달리 대책이 없어 늙어간다. 어떤 곳은 금세 갈아엎어지고 새 도시가 되기도 한다. 다른 도시는 몰라도 자신의 고향만큼은 옛 모습을 유지하며 오래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고향인 일산은 어느새 서른 살을 넘긴 도시가 되어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하겠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살던 강선마을 14단지가 고양시 최초로 리모델링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지난해 초 시공사 선정까지 마쳤다고 한다. 분담금 등의 문제 때문에 갈등이 빚어져 이후 진행이 더딘 것 같긴 한데, 리모델링이든 재건축이든 언젠가는 이루어질 분위기다. 나는 유년기를 아주 행복하게 기억하고 있고 내가 일산에 살았던 것이 그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적당한 규모와 연식의 아파트 단지, 그 안에 작은 화단이 딸려 있던 1층집. 걸어서 5분 거리의 학교, 풀과 나무를 좋아하는 내가 어린 나이에도 혼자 찾아갈 수 있었던 바로 앞 호수공원. 그런 일산을 두고 중학교에 입학하며 서울로 이사를 와야 했던 초반에는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서울에서도 금방 적응은 했지만 행복한 기억은 남아 먼 거리를 혼자 오갈 정도가 된 고등학생 때는 혼자서도 몇번씩 귀굣날* 이른 시간에, 아니면 방학에 일산에 들렀던 기억이 난다. 운전면허를 딴 이후에는 부모님 차를 끌고 다녀오기 시작했고 지금도 일산은 내가 가장 즐기는 드라이빙 코스 중 하나다. *우리 고등학교는 학기 중에 달에 한 번씩만 주말에 학생들을 내보냈고 그 주말 끝에 학교로 돌아오는 일요일을 귀굣날이라고 불렀다. 그런 일산에 우리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 바뀌면 솔직히 많이 섭섭할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나,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여야지. 그 전까지 더 많이 방문하고 더 열심히 눈에 담아두어야겠다. *** 이 아이는 훗날 십자인대를 끊어먹고도 축구를 끊지 못합니다. 선생님 지나가시기도 전에 후리죠? 근데 나 몇 년 전에 부모님 골프연습장 따라가서 채 휘둘러봤는데 공 맞히지도 못하던데 이때는 어떻게 한거지 ㅋㅋㅋㅋ뚝딱거리는 것 좀 보소
2y ago · #수필

읽는 중
2y ago · #책

읽는 중 *다음은 간만에 입맛에 맞는 소설을 찾아 흥분한 필자의 두서없는 폭주 감상문이니 읽는 이들의 주의를 바란다. **아래 "SPOILER ALERT!" 전까지는 스포일 위험도가 낮다. 일부 사항을 언급하긴 했으나 대부분 1부 초반부터 나오거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을 내용들이니 안심하라. 이 글이 오히려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Radiohead -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 <삼체>의 예고편 중 하나 에 삽입된 음악의 원곡인데, 책이나 이 감상문을 읽으면서 들을 노래를 찾는다면 이걸 들어라. 뽕맛이 두 배가 된다. ⋮ ⋮ --> 첫만남 넷플릭스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다 보고 나니 이어 나온 예고편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삼체』. 예고편을 끝까지 보았지만 스케일이 크다는 것만 느껴질뿐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전혀 짐작이 안 가서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다. 또 원작이 내가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 중국 소설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설국』을 읽은 직후에 도전하기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아시아 소설 최초로 휴고상을 수상하고, 오바마도 이 책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 소설부터 바로 읽기로 했다. 3월 말,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가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원작 소설도 이미 꽤나 많은 인기가 있는 듯했다. 원작 소설은 총 3부로 이루어져있는데 그중 1권이 동네 도서관은 이미 예약 가능 인원 초과, 전자도서관은 예약이 15명, 이튿날 다시 보니 22명으로 늘어있었다(지금은 45명이다ㅋㅋ). 어중간하지도 않게 그냥 이번 계절 안에는 대출이 불가능한 인원이길래 그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았다. 교보문고에서 책을 직접 사는 방법을 알아보았는데 종이책은 꽤 비쌌고(15,300원. 한끼 식사, 영화 한편에 비슷한 금액을 태우는 세상에 그리 비싸지 않을 수도 있는 금액인데 이상하게 책에 대한 가격 저항은 세다) 전자책 가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교보문고의 전자책 구독 서비스인 sam으로 삼체를 빌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달마다 일정 권수를 빌릴 수 있는 프리미엄, 그리고 무제한 플랜이 있었는데 무제한이 더 저렴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이러한 가격 책정에는 두 플랜으로 각각 빌릴 수 있는 도서 pool에 차이가 있다는 이유가 있었다. 프리미엄 플랜으로는 『삼체』를 대여할 수 있었지만 무제한 플랜은 그렇지 못했다. 사실 이건 미련하게도 무제한에 혹해서 그걸 먼저 끊고는 삼체를 빌리지 못한다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깨달았다. 월 당 두 권의 프리미엄 플랜이 월 9000원. 책을 꾸준히만 읽는다면 오프라인 도서관에서 원하는 도서를 예약해놓고 - 제때 찾아가고 - 다시 반납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저렴하다는 생각, 그리고 첫달은 1000원 행사를 하길래 다른 온라인 구독 서비스에 비해 큰 고민 없이 결제했다. 돈은 물건뿐만 아니라 시간과 체력도 살 수 있는 수단임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업데이트** 2권을 빌리려는데 계속 오류가 나길래 고객센터에 문의했더니 그새 pool에서 『삼체』가 빠졌다고 한다! 맙소사. 넌 바로 해지다. 줬다 뺏는 게 어딨어 과학기술과 상상력이라는 양 날개를 달고 창공을 향해 비상하는 작가 *작가 류츠신에 대한 혹자의 평가. 오바마는 『삼체』에 대해 "작품의 스케일이 워낙 커서 그걸 읽는 동안에는 백악관의 일상사가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 책을 읽기 전에는 그 말이 의아했다. 해봤자 책, 텍스트인데 어떻게 그 정도의 인상을 줄까. 그러나 그 말을 이해하는 데까지 몇 페이지 걸리지 않았다. 왕먀오가 "삼체" 게임을 시작한 직후 난세기에서 사람들이 탈수해 얇은 가죽으로 변한다는 걸 읽었을때,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건 그럴 법 하면서도 한번도 본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는 그림이었다! 그때 나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해보지 않는 특이하고 신선한 것을 상상하는, 그리고 그것이 어울리는 배경을 설정하는 작가의 능력에 반했다. 삼체 세계에서의 항성의 거동도 마찬가지다. 삼체문제의 일반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우주에는 쌍성계가 단일 항성계보다 많다는 사실 모두 책을 읽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별이 겨우 하나 늘어난 삼성계의 경우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복잡한 삼체 운동으로 인한 그 항성계에서의 생명의 삶은 더더욱. (실제로 관측(추정)된 최다 다중성계는 3중성도 아닌 무려 7중성계 라고 한다!) 갑자기 옛 삼성전자 로고가 다르게 보이는걸 이야기 전개의 자연스러움이나 과학적 타당성이 약간 떨어져보이는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양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미숙한 단계에 있던 비도(飛刀)가 바로 작전에 투입된 부분이나, 양성자 펼침(이 애초에 가능한 지에 대해서도 의문이지만 가능하다고 가정했을 때 지자(智子)는 묘사된 것보다 훨씬 더 큰 파괴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등. 다만 이것들은 소설적 자유라고 충분히 납득할 만한 범위 안에 있긴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고편에 달린 댓글 중에는 소설의 과학적 기반이 아주 단단하지는 못한 편이라서 영상으로 옮기기에 애로사항이 많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작품 속 세상의 설정이 얼마나 견고한지는 다른 유명한 SF소설들을 더 읽어보며 비교해보아야겠다. 소설의 매체적 특성에 관한 고찰 — 영화와는 다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소설이라는 예술의 갈래를 더 좋아하게 됐다. 소설은 이야기의 전달이 주된 목적이라는 점에서 영화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영화와 달리 가진 장점들에 주목했는데, 그 첫번째는 내 템포에 따른 소화가 가능하다는 것. 영화 보는 것을 즐기고 또 많이 보아왔지만 그에 비해 등장인물과 그 관계, 이야기 흐름을 영화의 첫 관람만에 완벽히 이해하는 내 자신의 능력은 떨어진다고 항상 생각해왔다. 그래서 요즘은 같은 장면을 여러번 돌려볼 수 있는 노트북으로 영화를 시청하는 걸 더 선호하기도 했다(웅장한 시각·음향 효과가 주를 이루는 일부 제외). 그러나 소설은 기본적으로 내 페이스에 맞추어 읽는다. 느리게 읽어도, 다시 읽어도 좋다. 메모를 하면서 읽어도 된다. 덕분에 다 읽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릴지언정 완독하고도 뭔가 놓쳤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두번째 장점은 글이라는 매체의 유연함에 기인한 표현의 확장 가능성에 있다. 사실 이건 독자보다 작가 입장에서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나 또한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여기에 주목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소설 원작의 드라마의 존재를 아는 채로 읽다보니 이 내용을 영상으로 다시 만든다면 어떤 모습이 될지를 책을 읽으며 계속 상상했다. 쉽지 않았다. 이야기의 스케일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스토리보드로 옮기고, 실제 영상으로 제작까지 해내려면 한 명은커녕 수 백 명도 부족한 일손이 들 터였다. 하지만 똑같은 이야기를 류츠신은 혼자 그려냈다. 소설에서 작가는 독자의 상상력에 기대어, 자신이 명시하지 않는 부분은 그것이 대신 채워줄 것으로 믿고 표현하고 싶은 부분에만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다. 결국 소설을 이해한다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만큼이나 거대한 독자의 상상력이 함께 작용하여 이루어내는 합작품인 것이다. 이런 특징 덕분에 소설 속 작가의 세계는 무한히 확장 가능하다. 1부 초반에 이런 구절을 읽었을 때 혼자 속으로 웃었다: "왕먀오와 스창은 물가의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적당한"이라니! 영상에서는 "적당한"이라는 어중간한 표현이 통하지 않는다. 모든 걸 구체화해야 한다. 이 장면을 영상으로 옮기려면 먼저 고즈넉한 강가와 거기서 앉을만한 바위를 찾고, 온화한 계절과 날씨에 맞추어 그 장소에 찾아가 결정적인 시간대에 미리 섭외한 배우들의 연기를 촬영해야 했을 것이다. 이 고된 과정을 글은 그냥 한 단어로 퉁칠 수 있는 것이다. 영상을 각종 장비와 계측기를 요하는 공학에 비유한다면 글은 분필과 칠판만 있으면 되는 수학과도 같다. 소설의 수준은 오롯이 상상하고 표현해낼 수 있는 작가의 능력에 달렸으며, 그렇기에 쓰기는 쉽지만 동시에 좋은 소설을 쓰는 것은 어렵다. — 영화와 비슷한 한편으로는 영화와 비슷한 장점도 있다. 처음 보는 분야나 장소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는 건 내가 영화 관람을 즐기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내 원픽 감독인 데에는 그의 작품이 다루는 허구의 이야기가 몹시 그럴듯하다는 점도 있지만 그 이야기들이 진행되는 신선한 배경에도 있다. <인터스텔라>의 가르강튀아 블랙홀, <덩케르크>의 덩케르크 해안, <테넷>의 수장고와 오페라 극장, <인셉션>의 파리 도심과 설원 등등.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여행을 떠난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때 발생하는 쾌감이 『삼체』를 읽으면서도 느껴졌다. 중국 소설을 읽는 게 처음이다보니 등장하는 모든 중국 지명이 새로웠고 문화대혁명 같은 시대적 배경도 신선했다. 삼체 세계는 말할 것도 없다. '쟁(箏)' 작전이 실행될 때 그 쾌감은 최대치를 찍었는데 바로 흘수와 건현, 파나맥스(Panamax) 같은 용어들을 모두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 어렵지도 않은데 지금까지 들어본 적조차 없던 이런 개념들을 이 책이 아니라면 난 어디서 접할 수 있었을까. 주제넘는 걱정 수준이 높으면서도 내가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오랜만에 읽다보니 이런 걱정도 했다: '이제 웬만한 소설은 성에도 안 차면 어떡하지?'. 그런 경험이 이전에 그림을 보면서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순전히 외부적인 요인으로, 누구를 따라가서, 혹은 싼 값에 표를 구해서 몇몇 미술 전시를 가보면서 나는 점차 내 자신이 그림 보는 것을 꽤나 좋아하는 사람임을 알게 됐다. 그걸 깨달은 20대 초반 이후로는 어디를 여행하든 시간이 허락하면 그곳의 미술관을 꼭 들렀다. 덕분에 그림이라는 넓은 범주 안에서 다시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주제와 화풍을 식별할 수 있었고, 또 만족스러운 관람에 요구되는 그림의 수준도 높아져갔다. 그러다가 작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을 보러 갔다. 영국 내셔널갤러리는 그림을 볼 줄 모르던 정말 어린 시절에 가보았던게 다라 항상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인물을 담은 유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그림이라서 이 전시에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방문한 첫날에는 이미 당일 표가 다 팔려서 관람에 실패했지만 다음날 다시 방문해서 기어코 입장했다. 그러나 막상 관람을 마친 뒤 남는 건 실망감이었다. 수 십 점에 달하는 그림들, 개중에는 렘브란트처럼 유명한 작가의 그림도 있었지만 이들 모두 내 마음을 크게 움직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전시에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단지 내 기준이 높아졌을뿐. 이제는 웬만한 그림들로는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유명한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먼길을 떠나야 볼 수 있는 소수의 그림들만이 눈에 차겠구나, 하는 막연한 걱정이 실제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몹시 건방지게 들릴 것임을 안다. 그렇지만 내 느낌이 그랬다. 이런 비슷한 걱정이 『삼체』를 읽으면서도 든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니 그림보다는 상황이 훨씬 낫다. 그림은 화면을 통해서나 인쇄된 것으로는 원본의 감동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원본을 찾아가서 보아야만 한다. 그에 반해 소설은 사본이 원본과 똑같은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 원문이 외국어로 되어있을 경우 번역이라는 새로운 장벽을 넘어야 하긴 하지만. 시라면 몰라도 소설에서의 번역 장벽은 그림에서의 복제 장벽보다는 훨씬 낮아보인다. 따라서 원본으로의 접근성 문제는 사소해지고 오히려 좋은 책을 발굴하고 꾸준히 읽고자 하는 내 의지가 병목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주제넘는 걱정보다는, 내 나태함으로 인해 뛰어난 소설들 대부분을 시작도 못한 채로 죽을 걱정을 먼저 하기로 했다. 그럼 이제 2권으로 다시 달려보자! <!-- 책, 글이 좋다. 적당히만 설정을 쓰고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면 되기 때문이더. Ex. 왕먀오와 스창은 물가의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Adobe PDF: 삼체에서 온거임? https://www.youtube.com/watch?v=8_RRZcqBEAc 해봤자 텍스튼데 상상력이 대단해도 얼마나 대단하다고..,. 했는데 사람을 탈수시킨다? 사람으로 컴퓨터만들기? 대단하면서도 중국스러운 상상력 유한요소법? 스펙트럼법? 베르나르 베르베르 넘어서나? 삼성! 영화를 볼 때도 내가 경험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주제, 배경의 이야기를 좋아하는데(인셉션을 좋아한 이유 중 하나) 삼체를 읽으면서도 그걸 경험했다. 흘수/건현, 파나맥스. 들어볼 일이 있었겠어? 선박 관련 용어들: 흘수/건현, 파나맥스(Pa
2y ago · #책

일본은 내게 가깝고도 먼 나라다. 북한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와 물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그래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여행지인 일본. 꽤나 많은 해외여행을 다녔음에도 그런 일본을 나는 아직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 가장 큰 이유로는 해외여행을 다닐 때 적용되는 내 특수하고 개인적인 상황이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도 단지 일본이 나랑 안 맞는다고 느꼈다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여행을 가장 큰 취미 중 하나로 삼는 나지만 일본을 찍은 사진은 내게 떠나고픈 설렘을 준 적이 거의 없다. 아,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곳이 딱 한 군데 있는데 바로 겨울의 삿포로다. 하지만 그곳의 사람과 문화보다는 눈내린 자연 경관이 궁금했던 것이니 일본의 '문화'는 아무래도 나를 잡아끄는 요인은 아닌 듯하다. 물론 무언가를 제대로 경험해보기도 전에 그건 나와 안 맞는다고 단정짓는 건 위험한 일이다(여행지도, 진로도, 사람도). 그래서 누군가 내게 일본을 같이 여행하자는 제안을 해온다면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언젠가 혼자 가볼 수도 있다. 일본만큼 가까운 나라인 중국도 여행 전보다 후에 내 인식이 훨씬 더 좋아졌던 것(사실 이건 두 번의 중국 여행 모두 각각 어떤 authority 아래서 편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지만)을 생각하면 더욱 그래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심상을 이야기할 때, 일본은 나와 잘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의 예술로 대상을 좁혔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독보적인 지위를 구축했고 나도 이를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나에게 예술적인 울림을 준 작품은 『센과 치히로』를 제외하면 없다. 일본의 문학으로 가면 상황은 더욱더 심각해져서 내가 끝까지 완독한 일본 문학이 거의 없을 정도다. 적어도 내 기억엔 없다. 그래서 며칠 전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완독이 쉽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었다. 사실 집에 오래 전부터 있었어서 몇 년 전에 한 열 쪽 스무 쪽 읽다 내팽개친 이력도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한번은, 적어도 한번은 일본 문학도 제대로 경험해보아야 한다고, 그리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자세를 고쳐앉고 독서에 임했다. 이 정도 길이도 다 못 읽으면 넌 빠가사리다, 라고 결의를 다지며(오 이럴 땐 일본어가 찰지군). 그 과정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160쪽 남짓을 읽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거야'라고 생각하길 수십 번. 일본과의 케미가 나랑 비슷한 정도인 것 같은 어머니께서 옆에서 보시면서 그건 끝까지 읽어도 모를 거라고 알려주셨지만 나는 애써 부정하며 결국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결론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불륜이 공공연히 자행되는 것, 그럴 수 있다. 작품 속 시대와 문화가 내가 사는 세계와 다르고, 보편적으로 부도덕한 일도 그것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작품 속에서야 뭐 문제 없다. 하지만 이야기에서는 그 어떤 메시지도 읽어내지 못했다. 그럼 문체에 집중해야 하나? 비평들을 보면 이 책이 문체로 유명해진 건 맞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작가가 독특한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그 독특함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건 감동보다는 마치 최준의 B대면데이트를 보고 있으면 드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과 거부감에 가까웠다. 이유가 뭘까? 일본의 문화를 내가 알고 있지 못해서일까? 언어를 옮기면서 운율과 같은 의미 외 요소가 소실된 탓일까? 아니면 정말 그냥 나랑 안 맞는 것뿐일까? 마지막 경우라면 이건 참 흥미로운 사례다. 사실 난 상당히 재미없는 부류의 사람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즐기지만 나는 향유하지 못하는 것들이 꽤 있다. 이를테면 커피 마시기, 음주, 스포츠 팀 응원 등등. 이것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이해는 한다. 이들과 다르게 『설국』이 흥미로워지는 것은 그것을 좋아할 이유조차 모르겠다는 데에 있다. 『설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화이글스 팬이나 소주 애주가보다 발견하기 힘들지만 『설국』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분명 그러한 사람이 많다는 걸 의미할텐데. 일본 문화권 밖에,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설국』을 제대로 즐겼던 사람이 있다면, 내게 한번 대화를 걸어 나를 일깨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세계인지 나를 납득시켜줘. 기껏 오랜만에 길게 써내려간 독후감 요지가 '이건 나랑 안 맞는 것 같다'라니 나로서도 좀 아쉽지만, 솔직한 감상이 그랬다. *** 아래는 『설국』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가 일본어를 할 줄 몰라서, 운율을 읽지 못해서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떠올랐던, 예전에 지나쳤던 유튜브 영상. The bigger the circle of the known, the greater the contact with the unknown. 언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평생 배우지 못할 언어로 된 수작들은 얼마나 많겠냐는 생각에 슬퍼진다는, 자랑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공감되는 내용이다.
2y ago · #책

회사 대표님께서 라운지에 남아돈다고 그냥 주신 책. 나도 모르는 새에 가장 많이 방문하는 소매점이 된 다이소. 그들에 대한, 항상 궁금하긴 했지만 따로 찾아볼 정도는 아니었던 질문들에 답이 되는 이야기라 정말 즐겁게, 금세 읽었다. 다음에 다이소에 방문하면 매장에 대한 박정부 회장의 진술이 사실인지 따져보는, 또 제품에 들어간 수많은 고민들을 상상해보는 재미있는 일들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2y ago · #책

읽는 중
2y ago · #책

제목이 좀 무시무시하게 생겼는데,,, 원본 영문 제목을 그대로 번역하니 이렇게 되어버렸다. 어제, 어느새 GitHub repo가 서른 개가 넘어가길래 필요없는 것들은 정리하던 와중에 한 repo가 눈에 띄었다. git 사용이 익숙해진 학부 고학년부터는 코드 작성이 필요한 전산과 과제들은 원본 코드를 GitHub에 백업했는데 그렇게 올라간 과제 중 하나였다. 21년 가을에 수강한 [인공지능 기반 소프트웨어 공학] 과목의 두 번째 과제로, metaheuristic search를 적용할만한 real-world problem을 찾고 이를 해결하는 solver를 구현해야 했다. 겨우 2년이 지났지만 내용은 다 까먹고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것마냥 흥미롭게 보고서를 읽어내려갔는데 웬걸, 좀 재밌다. 서울 집과 대전행 버스를 타는 고속버스터미널 사이에서 주구장창 탔던 9호선 급행에 착안해 주제를 잡았는데 그 과정이 꽤나 신선했다. 내 작업에 이런 말 하기 낯부끄럽기도 한데 어쨌거나 오랜만에 읽어본 감상은 그랬다. 그래서 자기만족성으로 블로그에도 올리기로 했다.ㅎ 주제를 자유롭게 고를 수 있는 과제는 학생의 성장에 있어 양날의 검과 같다. 교수도 예상하지 못한 창의적인 주제 선정으로 크게 역량을 키울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개떡같이 해놓아도 큰일이 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 그러한 과제들은 다행스럽게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 대부분인 것 같다. 이건 그 중에서 평이한 편이고, 더 이상한 주제를 잡아놓고 그런 과거의 나를 원망하며 어거지로 해낸 과제들이 돌이켜보면 나를 한층 성장하게 만들어준 경우가 여럿 있었다. 양방향 통신위성 제작, 2차원 재사용 로켓 착륙 시스템 개발 등…ㅋㅋㅋ 이들에 관해서도 나중에 여기에 썰을 풀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 아래 GitHub repo에 포함된 solver와 보고서로 이루어진 본 과제 제출물은, real-world problem으로 여러 단계의 급행이 있는 지하철 노선에서의 최단시간 경로를 찾는 문제를 선택하고 이를 유전알고리즘을 사용한 metaheuristic search로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 GunheeYi/cs454-ass2 — Github Repository 보고서 (제출 버전에서 약간 수정됨) 2021 Fall CS454 at KAIST Assignment 2: Solving Minimum-Time Path Problem in a Metro System Involving Multiple Levels of Express Lines, Using Genetic Algorithms Gunhee Yi (20180431) In almost every weekend I take the line 9 of Seoul Metro. It conveniently connects the Express Bus Terminal and my town, and the 18 minutes that I spend there becomes the last step of the long journey from KAIST in Daejeon to my home in Seoul. 18 minutes, that is the time when I take the express train. There are both express and local trains in line 9. It takes 30 minutes if I take the local train, so it is better to take the next express rather than the local one even if I just missed the express. Though knowing that already, I still check the metro app often to see the arrival time of the next train. Then one day, as I was staring blankly through the screen, I started wondering about the cases where the departing or arriving stations were not express stations. In these cases, going forward some local stations before/after getting in/out of an express train was a common doing. But what if going BACK a little actually earned you some time? It turns out that it is not the case in line 9. Refer to the following deduction: Settings: $s_1$ is a local station right after the express station $s_0$. There are $n$ local stations between $s_0$ and another express station $s_{n+1}$. You are now at $s_1$ and desires to reach $s_{n+1}$. It takes constant $l$ minutes for a local train to move 1 station. It takes $e$ minutes for an express train to move from $s_0$ to $s_{n+1}$. Going forward for $n$ local stations takes $ln$ minutes, whereas going back a station and taking the express takes $(l+e)$ minutes. If the backward route is to be better, it should be $l+e There are not any adjacent pairs of express stations in line 9 that has more than two local stations in-between, so going back should never be an option for the passengers. But further search revealed that there was another line that had expresses. It was line 1, and its expresses passed through well over 10 stations during their operation. Now that we have found a real-world example that going back would actually benefit us, many path-finding algorithms may fail or struggle to utilize the fact. Take a greedy algorithm for example, which picks a path that is now possible and most decreases the distance to destination at a constant time. It will never try going back because it increases both the distance and time taken, in short sight. An algorithm that looks through every possible routes, will succeed on finding the optimal path but will still struggle, for two reasons. First, the capability of going back practically doubles the number of edges. Most of the path finding algorithms has a time complexity proportional to this number, so the solving time will double as well. Second, loop is newly introduced. A loop may cause the path finder to iterate in it indefinitely and fail eventually, so we should modify the algorithm to detect and exclude loops from its routes. This is where I thought the genetic algorithm could come to place. In a problem like this, we expect that suboptimal solutions will be a lot alike with the actual optimal solution. And in alike I mean that their paths are likely to be the same part by part. This is what the genetic algorithm directly looks for. By some predefined methods, my genetic algorithm will try to preserve the optimal part of genes (that is, sub-paths in this case) and try new types in other parts. By doing this, the genetic algorithm exceeds other algorithms in that it retains some memories and only tries solutions that are likely to be good, using prior memories. There is also some factor of "exploration" such that the solver lies not only in local optimums. One may argue that even though the amount of calculation increases due to the addition of reverse ways, it is still in a manageable range for the traditional algorithms and a modern computer to handle if the number of stations is limited to about the magnitude of a single metro line. I was also convinced by this self-argument, so I decided to complicate the problem in a useful way: adding multiple levels of expresses. There won't be many metro systems that has multiple levels of expresses in a single line, but we can think of it as an analogy of the whole transportation system that involves not only metros but also buses, trains and even airliners. Level 0 should be the slowest means such as town buses, and the highest level should be the airliner. This kind of expansion will allow the problem to be applied to a system not only with higher levels, but also with bigger number of "stations" (Think about the number of stations that you would have to pass if you were to travel from Seoul to Busan only on town bus!), where traditional algorithms will begin to fall. Now that I have pictured the problem, I formulated into a real set of stations and local/express lines. Refer to the following: Level 0 (2min): 0-1-2-3-4-5-6-7-8-9-10-11-12-13-14-15-16-17-18-19-20 Level 1 (5min): 1---------6----------11-------------16 Level 2 (8min): 0-------------------10----------------------------20 * Mr. Yi is now at station 2, and wants to reach station 19. In this setting, there are 21 stations and three level of lines in total. Level 0 line is the local line, where every adjacent stations are connected and takes a 2 minute ride between. There is level 1 line as well, and this connects every $(5n+1)$th stations with a 5 minute ride. Lastly we have the level 2 line, where every $(10n)$th stations are connected. It is the sparsest but is the fastest at the same time (10 stations in 8 minutes). Using this metro system, Mr. Yi wants to travel from station 2 to station 19. Now let's see through some example solutions: Sol1. 2-19, 34 minutes (using only level 0) Sol2. 2- 6-16 -19, 24 minutes (using level 0 and 1, no reverse direction) Sol3. 2-<span class="l
2y ago · #CS
●○ 심란해서 좋았던 소설은 처음이라고 하겠다. 담 (◯) 할아버지 이모 구 (●) 부모님 노마 더지 진주 몸은 고되고 앞날은 곤죽 같아도, 마음 한구석에 영영 변질되지 않을 따뜻한 밥 한 덩이를 품은 느낌이었다. (73) 우리는 사귄다는 단어를 채우고도 그 단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넘쳐흐르는 관계였다. (76)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151)
2y ago · #책

읽는 중
2y ago ·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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