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 (1)
지지난 토요일(이 글의 작성을 시작한 건 8월 중순)에 대전에 당일치기로 방문해 석사 과정 동안 머무를 집을 계약했다. 집 때문에 대전을 내려간 건 사실 두 번째였다. 다시 2주 전, 그러니까 한 달쯤 전에 이미 한번 내려와 방을 둘러봤었다. 지난 글에 썼다시피 차를 끌고 멀리 나가는 것을 불사해서라도 조건이 가장 좋은 집을 찾고자 어은동, 궁동부터 봉명동과 월평동까지 헤집고 다녔다. 그러나 마음에 쏙 드는 곳은 없었고 집들이 모두 나열한 조건 중 꼭 하나씩을 만족하지 못하는 바람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돌아온 터였다.
나를 데리고 방을 보여주러 다니신 중개업자분께서 꽤나 열정이 가득하셔서, 내가 서울로 돌아온 이후에도 새롭게 올라온 조건에 맞는 방들 사진을 계속 보내주셨다. 처음 몇 개는 그저 그랬는데 계속 보다 보니 한 개가 괜찮아 보였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내가 테라스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더라. 이 집에도 개인 테라스가 있었고, 북동향이긴 했지만 테라스가 있다면 수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다음다음 날 바로 내려갔다.
방은 사진과 다를 바 없었고 비교적 신축에 월세도 높은 편은 아니었다. 온 김에 다른 방들 몇 개도 더 둘러보았지만 그곳보다 나아 보이지 않았다.
땡볕에 방을 대여섯 개씩 보고 나니 진이 빠질 대로 빠졌고 내 마음은 그곳으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전날 밤에 부모님과 인터넷으로 보았던 아파트 매물이 떠올랐다.
사실 난 이미 학교 근처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있었다. 학부를 다닐 동안 궁동의 두 군데에서 자취했었는데 첫 번째는 3평 정도의 원룸이었고 두 번째는 무려 24평형의 아파트였다(!). 자, 나를 금수저라고 부르기 전에 내 이야기를 들어보라.
사실 난 첫 번째 원룸을 이을 다음 집으로, 똑같은 원룸이지만 8~10평 정도의 큰 방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궁동에서는 3~4평, 커봤자 5~6평 정도의 방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궁동에 새로운 건물들이 지어지고 원룸이 넓어지기 시작한 건 생각보다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 때문에 당시 나와있는 궁동 매물 중에서 7평 이하를 제끼고 나니 가능한 다음 매물은 24평형 아파트인 기이한 상황이 발생했다. 궁동에 몇 개 없는 아파트 중 하나였던 그 건물에 17평형과 24평형 이렇게 두 형태가 있었는데 그마저도 17평형은 호실이 많지 않아 그중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이 없었다.
월세도 높지 않았다. 높지 않기만 한 정도가 아니라 면적당 월세를 생각하면 원룸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았다. 내가 살았던 24평형 아파트의 보증금/월세에 법정 전월세전환율을 적용하면 이번에 보았던 9~10평 원룸과 조건이 완전히 동일할 정도다. 3년의 시간차와 더 높은 관리비를 감안하더라도 확대되는 면적에 비해 비용 차이는 크지 않았다.
이런 탐색과 비교 과정을 거쳐 24평 아파트에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다시 원룸부터 찾아보았는데, 그때 아파트에 살아보면서 면적과 가격 외에도 살기 좋은 집이 갖추어야 할 큰 요소가 또 있다는 걸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옵션이었다. 아파트에는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 학부 때 살던 아파트에도 일체의 붙박이 부엌 정도가 가구의 전부였다. 놀랍게도 본가에 냉장고와 세탁기가 딱 하나씩 놀고 있어, 이사를 들어갈 때 조립식 책상 2개 + 책장 + 옷걸이 + 매트리스와 함께 용달을 불러 서울에서 대전까지 수송했다. 그렇게 듬성듬성 채워 넣은 가구들은 윤택한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당연히 부족했다. 그렇다고 새 가구를 사자니 얼마 남지 않았던 졸업에 맞추어 방을 뺄 때 처분하기만 곤란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장장 16개월을 24평의 광야에서 단 7개의 가구와 함께 지냈다. 침대 프레임 없이 그냥 바닥에 바로 매트리스를 깔고 잤고, 에어컨 없이 두 여름을 보냈다1. 궁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가구를 더 사지 않은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다시 상경할 때는 용달을 부르지 않고 차 두 대에 실을 수 있는 짐만 남기고 모두 팔아치웠는데 그 과정이 얼마나 번거로웠는지 모른다.
1. (아파트가 산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 있어 시원함 + 난 추위를 아주 잘 타고 더위는 잘 참음)의 콜라보긴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버텼지?
그 번잡스러운 일들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웬만하면 원룸을 구하고 싶었다. 그간 신축 건물도 많이 생겼으니 괜찮은 방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날 밤 인터넷으로 어머니께서 학교와 가까운 월평동 쪽 아파트 월셋집을 몇 개 찾으셨을 때도 결국 우리의 결론은 가능하면 풀옵션 원룸을 찾자는 것이었다.
다시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던 궁동 거리로 돌아와서, 테라스 있는 그 방으로 그냥 계약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먼 길 온 김에 후회하지 않게 싹 다 둘러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발걸음을 뗐다. 사실 테라스 방이 성에 안 차기도 했다. 일조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내게 북향은 사실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찾아본 아파트는 세 군데, 그중 하나는 담당 중개업자가 휴가를 갔고 또 하나는 세입자 사정으로 당장 방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남은 한 곳만을 겨우 볼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신혼부부가 나를 맞이했다. 집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건물은 지어진 지 30년이 넘었지만 내부는 리모델링해서 나름 깔끔한 편이었다. 면적은 13평으로 혼자 살기에는 충분했고2 보증금/월세는 테라스 원룸과 완전히 동일했다! 또 테라스는 아니지만 남향으로 난 베란다가 있었다.
2. 사실 전의 24평 아파트는 정말 투머치 그 자체였다. 난 집이 너무 넓어도 안 좋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거실과 안방을 제외한 작은 두 방과 베란다, 안방 화장실 등 내가 쓰지도 않는 공간들까지 함께 청소하느라 등골이 빠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딱 10평대 초중반 정도 면적이면 완벽하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여기에 가구만 있으면 완벽할 텐데', 생각하던 와중에 신나게 돌아가고 있던 벽걸이 에어컨이 눈에 띄어, 이건 원래 있던 거냐고 부부에게 물어봤다. 들어오면서 가지고 들어왔다고 남편이 대답했다. 또 그럴 생각이 있으면 설치비 정도만 받고 넘겨주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냉장고와 세탁기를 포함해 여기 있던 가구의 대부분을 모두 당근으로 팔아치울 생각이라고 했다.
엥 뭐라고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면서 머리에서 행복회로가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이 가구들을 싼 값에 받을 수만 있다면 아파트의 유일한 결점이 한 번에 해결되는 것 아닌가?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물어봤다. "그럼 안 가져가시는 것들 다 저한테 파시면 안 될까요?" 돌아오는 대답은 더 경쾌했다. "그러시면 저희도 편하고 감사하죠." !!!
정확한 조건은 다시 협의하기로 하고, 미소가 한가득인 채로 일단 집을 나와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말했다. 하하하하 저 로또 맞은 거 같아요. 땡볕에 먹었던 더위도 온데간데없는 듯했다.
다시 공인중개사 사무실로 돌아와 내가 받으면 좋을 가구를 쫙 정리했다. 찾아보니 가구 버릴 때 드는 폐기물 수거 비용은 생각보다 얼마 안 하더라. 그래서 가구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되는대로 받아놓자고 생각했다. 집에 방문했을 때 부부 허락을 받고 찍어두었던 영상을 돌려가며 가구를 받아적기 시작했다:
가격 흥정은 내가 직접이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중개인께서 대신 해주시겠다길래 마다하지 않았다. 중개인은 내가 적어놓은 목록을 넘겨받고서는, 이렇게 구구절절 길게 써놓아서야 싸게 받을 수 있겠냐고 했다. 그러나 대충 이야기해 두었다가 이사 당일에 가서 의견 차이로 누군가의 기분이 상하거나 계약이 파투나는 것보다는 백번 나았으므로, 그대로 전달하고 그중 양도 가능한 것을 품목별로 가격을 적어 회신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얼마를 부를까, 긴장과 궁금함 속에 20분여가 흐르고 마침내 답장이 왔다:
오. 내가 그렇게 부탁은 했지만, 정말로 품목별로 빠짐없이 가격이 적힌 메시지를 보고 있자니 참 흥미로웠다. 양의 가격뿐만 아니라 그냥 넘겨줄 수 있는 물건에는 0, 양도가 불가한 물건에는 x가 달려있었고 중간에 내가 제기한 의문에 대해서도 답변이 잘 달려있었다. 심지어 내가 빠뜨렸던 세탁기도 새로 쓰여 있었다. 내가 기다리던 한참의 시간 동안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이건 얼마에 넘길까, 토의하는 귀여운(?)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또 한참이 걸릴 수도 있었던 협상을 한 번의 문자 왕복으로 끝낸 나와 부부의 효율성에 탄복했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도 더 즐거웠던 건 바로 적힌 가격 그 자체였다! 냉장고 + 세탁기 + 에어컨 + 침대 프레임/매트리스/사이드테이블 + 소파 + 책상 + 의자 + 트레이 + 행거 + 화장대 + 신발장 이 모든 것이 23만 원에! 어떤 구체적인 액수를 상상하고 있던 건 아니지만 내 예상보다는 확실히 낮았다. 부부의 마음이 바뀔세라 얼른 그렇게 그대로 받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세입자로부터 중개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무슨 말을 하려나 긴장한 채로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알고 보니 전기포트도 만 원에 같이 받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로서는 포트를 쓸 일이 거의 없어 그 효용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중개인의 전화 너머로 세입자의 음성이 들렸다: 아니 다른 물건들을 그렇게 싸게 넘겼는데 뭘 또 고민하고 있대요? ㅋㅋㅋㅋㅋ 거의 무슨 강매에 가까웠지만! 내가 선심 써서(ㅎ) 큰 고민 없이 포트까지 받겠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포트는 내 본가에 있던, 어머니가 나름 철저한 선정 과정을 거쳐 구매하신 것과 똑같은 모델의 것이었다. 정가는 5-6만 원씩 하더라.
협상의 타결과 함께 나의 새로운 집은 그 아파트로 결정되었다. 운이 굉장히 좋았다. 그 부부는 하늘에서 내게 내려준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 그러나 내가 포악한 날씨에 굴복해 아파트를 보지 않기로 했다면 그 행운을 만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자취방을 구하는 후배가 있다면 다음의 말들을 꼭 전해주고 싶다:
1. 아파트를 적극적으로 알아보라. 원룸보다는 대체로 비싸겠지만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삶의 질이 올라간다. 어쩌면 원룸보다 쌀 수도 있다.
2. 무조건 발품을 팔라. 집은 더 많은 것을 비교·분석할수록 더 좋은 것을 얻을 확률이 아주 높아지는 재화 중 하나이다.
3. 집을 볼 때에는 영상을 함께 찍어두라. 전 세입자가 살고 있다면 양해를 구해서라도. 집을 볼 때 고려해야 하는 건 한둘이 아니어서 현장에서 빠짐없이 확인하기도 어려울뿐더러 2를 철저히 따르고 있다면 비슷비슷한 매물들이 기억 속에서 섞이기 시작한다. 그럴 때 영상은 큰 도움이 된다.
「나 혼자 산다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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