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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입력 2024.03.17. 07:08 · 수정 2024.04.09. 15:06 · 라이선스
라이선스


일본은 내게 가깝고도 먼 나라다.

북한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와 물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그래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여행지인 일본. 꽤나 많은 해외여행을 다녔음에도 그런 일본을 나는 아직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 가장 큰 이유로는 해외여행을 다닐 때 적용되는 내 특수하고 개인적인 상황이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도 단지 일본이 나랑 안 맞는다고 느꼈다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여행을 가장 큰 취미 중 하나로 삼는 나지만 일본을 찍은 사진은 내게 떠나고픈 설렘을 준 적이 거의 없다. 아,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곳이 딱 한 군데 있는데 바로 겨울의 삿포로다. 하지만 그곳의 사람과 문화보다는 눈내린 자연 경관이 궁금했던 것이니 일본의 '문화'는 아무래도 나를 잡아끄는 요인은 아닌 듯하다.

물론 무언가를 제대로 경험해보기도 전에 그건 나와 안 맞는다고 단정짓는 건 위험한 일이다(여행지도, 진로도, 사람도). 그래서 누군가 내게 일본을 같이 여행하자는 제안을 해온다면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언젠가 혼자 가볼 수도 있다. 일본만큼 가까운 나라인 중국도 여행 전보다 후에 내 인식이 훨씬 더 좋아졌던 것(사실 이건 두 번의 중국 여행 모두 각각 어떤 authority 아래서 편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지만)을 생각하면 더욱 그래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심상을 이야기할 때, 일본은 나와 잘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의 예술로 대상을 좁혔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독보적인 지위를 구축했고 나도 이를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나에게 예술적인 울림을 준 작품은 『센과 치히로』를 제외하면 없다.

일본의 문학으로 가면 상황은 더욱더 심각해져서 내가 끝까지 완독한 일본 문학이 거의 없을 정도다. 적어도 내 기억엔 없다.

그래서 며칠 전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완독이 쉽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었다. 사실 집에 오래 전부터 있었어서 몇 년 전에 한 열 쪽 스무 쪽 읽다 내팽개친 이력도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한번은, 적어도 한번은 일본 문학도 제대로 경험해보아야 한다고, 그리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자세를 고쳐앉고 독서에 임했다. 이 정도 길이도 다 못 읽으면 넌 빠가사리다, 라고 결의를 다지며(오 이럴 땐 일본어가 찰지군).

그 과정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160쪽 남짓을 읽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거야'라고 생각하길 수십 번. 일본과의 케미가 나랑 비슷한 정도인 것 같은 어머니께서 옆에서 보시면서 그건 끝까지 읽어도 모를 거라고 알려주셨지만 나는 애써 부정하며 결국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결론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불륜이 공공연히 자행되는 것, 그럴 수 있다. 작품 속 시대와 문화가 내가 사는 세계와 다르고, 보편적으로 부도덕한 일도 그것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작품 속에서야 뭐 문제 없다. 하지만 이야기에서는 그 어떤 메시지도 읽어내지 못했다. 그럼 문체에 집중해야 하나? 비평들을 보면 이 책이 문체로 유명해진 건 맞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작가가 독특한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그 독특함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건 감동보다는 마치 최준의 B대면데이트를 보고 있으면 드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과 거부감에 가까웠다. 이유가 뭘까? 일본의 문화를 내가 알고 있지 못해서일까? 언어를 옮기면서 운율과 같은 의미 외 요소가 소실된 탓일까? 아니면 정말 그냥 나랑 안 맞는 것뿐일까?

마지막 경우라면 이건 참 흥미로운 사례다. 사실 난 상당히 재미없는 부류의 사람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즐기지만 나는 향유하지 못하는 것들이 꽤 있다. 이를테면 커피 마시기, 음주, 스포츠 팀 응원 등등. 이것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이해는 한다. 이들과 다르게 『설국』이 흥미로워지는 것은 그것을 좋아할 이유조차 모르겠다는 데에 있다. 『설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화이글스 팬이나 소주 애주가보다 발견하기 힘들지만 『설국』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분명 그러한 사람이 많다는 걸 의미할텐데. 일본 문화권 밖에,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설국』을 제대로 즐겼던 사람이 있다면, 내게 한번 대화를 걸어 나를 일깨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세계인지 나를 납득시켜줘.

기껏 오랜만에 길게 써내려간 독후감 요지가 '이건 나랑 안 맞는 것 같다'라니 나로서도 좀 아쉽지만, 솔직한 감상이 그랬다.

***

아래는 『설국』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가 일본어를 할 줄 몰라서, 운율을 읽지 못해서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떠올랐던, 예전에 지나쳤던 유튜브 영상. The bigger the circle of the known, the greater the contact with the unknown. 언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평생 배우지 못할 언어로 된 수작들은 얼마나 많겠냐는 생각에 슬퍼진다는, 자랑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공감되는 내용이다.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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