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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입력 2022.01.09. 13:00 · 수정 2022.01.13. 02:50 · 라이선스
라이선스


1월 9일 방문.

리움미술관 앞 정원

M1

2층

김홍도, 군선도, 1776.

김홍도가 그린 신선 그림이라니. 내가 보아왔던 그의 풍속화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특유의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표정이 살아있어 보는 재미가 있었다. 가운데 무리에 말에 뒤로 탄 채 책을 골똘히 들여다보고있는 신선이 있는가 하면 한 신선은 자로 무언가를 열심히 재고 있다. 그 옆의 하인은 짐이 무거운지 얼굴이 뾰루퉁하다.

한쪽에 날아가는 박쥐도 눈여겨 볼만 한데, 신사임당의 까치/참새 그림에서도 느꼈지만 어떻게 사진도 없던 시대에 동물의 모습을 이렇게 정확하게 담아낼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박쥐는 그리 흔하게 보이는 동물도 아닌데 말이다.

금동여래입상.

교과서에서도 자주 접한 이 동상이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사진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여래의 옷 주름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헐렁한 옷감은 들고 있는 팔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을뿐 아니라 상체보다 약간 튀어나온 허벅지를 감아 내려오는데, 이 섬세한 표현에서 문득 유럽 여행 중 보았던 대리석 조각들이 생각났다. 그때 그 피부와 얇은 천 묘사에 정말 경악했었는데. 규모나 정교함에서 금동여래입상이 대등한 수준이라고 보긴 어렵겠지만 그들이 연상될만한 작품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좋았다.

요시오카 도쿠진, 워터 블록, 2002.

고미술도 아니고 국내 작품도 아니지만 작품 자체가 관람객들이 앉아 쉴 수 있는 벤치의 형태라서 M1 1층 중간에 놓여있다. 간결한 스테인리스 프레임 위에 표면이 물결 무늬로 된 두꺼운 유리 블록이 얹혀 있는데, 작품 설명처럼 이것이 기포 하나 없는 얼음의 형상과 같아서 무척 시원한 느낌을 준다.

M2

추상미술을 향유할 예술적 시각을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한걸까,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현대 미술품들은 실재하는 사물을 표현한 것이나 적어도 그것들이 연상되는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연결되는 개념 하나 없이 작품 그대로 희열을 느꼈던 것은 중학생 때 보았던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유일하다. 때문에 후에 소개할 작품들 중 의도를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난해한 것은 없을 것이다.

Mark Rothko, Ochre and Red on Red, 1954.

2층

바이런 김, 깊은 밤.

이 작품은 특히 내가 직접 찍었던 밤하늘 사진과 너무 비슷해 기록에 남긴다. 인스타그램에도 올린 적이 있는 내 사진에서는 가운데에 뜬 구름이 마치 은하수를 연상케 한다. 바이런 김의 그림의 경우 구름이나 그 옆의 작은 별은 보이지 않지만, 겨울에 앙상한 나뭇가지들과 그 사이로 뻥 뚫린 밤하늘의 푸른 색체에서 그는 아마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찍은 사진.

배영환, 유행가-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2007.

철창 너머 멀리에 바닷가에서 물놀이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영상이 투영되고 있고 배경에는 밥 딜런의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가 흐른다. 영상은 흑백인데다 나와 그들 사이에는 촘촘한 창살, 그들의 행복은 나와 아주 먼 듯싶다. 현실의 삶에 크게 부족한 게 없는 나인데도, 그들은 내가 갖지 못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나른한 노래 때문에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진짜는 맞을까, 혹시 꿈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내가 잠깐 천국을 엿볼 수 있다면 보게 될 이미지는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살아있는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 천국에 대한 작가의 묘사에 내가 공감할 수 있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내가 어떤 종교를 믿어서 천국에 대한 구체화된 인식을 습득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더욱 흥미로운건 이와 몹시 유사한 느낌을 다른 문화권의 작품에서도 받았다는 것이다. 바로 Arcade Fire라는 캐나다 밴드의 노래 <Afterlife>의 뮤직비디오에서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얼른 보고 오자. 한국에서 유명한 밴드는 아닌 것 같고 나도 우연한 기회에 이 한 노래만을 접하게 되었는데, 노래 자체도 좋았지만 뮤직비디오를 보고 더욱 반하게 되었다.

줄거리.

아버지는 길가에서 꽃을 판다. 수완이 그리 좋지는 못한 것 같다. 지나가는 차들에게 꽃다발도 들어보이고 손짓도 해보지만 차들은 쌩 지나가버리고 만다.
힘겨운 하루가 끝나고 아버지는 두 아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어머니는 자리에 보이지 않는다. 적막 속에서 짧고 무미건조한 대화가 오간다. 오늘 무얼 했느냐고 아버지에게 묻는 큰아들의 말로 미루어보아 아버지는 별다른 직장을 가지고 있지도, 아들과 자주 대화하는 것 같지도 않다. 조용한 식사가 끝나고 세 남자는 각자 잠에 든다. 아내와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실현되지 못한 욕구는 그들의 꿈에 그대로 투영된다.
작은아들은 웬 세탁소에 와있다. 낯선 여자가 그를 카트에 싣고 어디론가 끌고 가더니 이내 세탁기에 넣고 뚜껑을 닫아버린다. 아들은 금방이라도 돌아갈 듯한 세탁기 속에서 공포에 떨다 결국 잠에서 깬다. 그리고 자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 그 옆에서 다시 잠을 청한다. 그곳에서 그는 비로소 어머니에게 안긴 듯한 편안함을 느낀다.
큰아들은 사실 잠을 자는 대신 아버지 몰래 친구의 파티에 나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는 맘껏 놀지 못하고 들판에 누워 잠이 든다. 꿈속에서 걸어가는 복도에 또래 여자아이들이 보이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더 걸어가니 안뜰이 나오고, 그 가운데 수영장에서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 아이의 세례식을 함께하고 있다. 그는 수영장 앞까지 다가가지만 모든 면이 높은 울타리로 막혀있어 의식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꿈은 더욱 뒤틀려있다. 가로등이 비스듬히 서있고 공사 자재가 어지러이 널브러져있는 이상한 공간을 지나 그는 지하의 한 무도회장으로 향한다. 넓은 방 안에 남녀들이 짝을 지어 춤추고 있는 가운데 한 여인이 그를 등진채 가만히 서있다. 아버지는 나아가 그 여인을 부드럽게 안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높이 난 창이 점점 어두워지며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눈을 감는다.

뮤직비디오의 소재와 표현은 배영환 작가의 작품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눈앞에 물가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무리가 있지만 철창과 울타리 때문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고, 아버지의 꿈은 바닷가의 젊은이들처럼 온통 흑백이다. 가보지 못한 천국에 대한 감정은 신기하게도 물리적인 경계를 넘어 모든 인류에게 공유되는 모양이다.

폴 매카시, 설백 난쟁이 (행복이).

작품 설명: (전략) 작가는 순진무구해보이는 대중문화 캐릭터들의 순수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이면에 도사려 있는 폭력적이고 외설적인 성격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 항상 웃는 모습이던 행복이의 한쪽 눈과 입은 둔기로 세게 맞은 것처럼 함몰되어 있습니다. (후략)

본래 작가의 의도는 아주 무거운데... 행복이를 원래 잘 몰라서 그런가 왜 나는 이 모습이 웃기지? ㅋㅋㅋㅋㅋ 둔기로 세게 맞고도 해맑게 웃고있는 표정에 나까지 즐거워지는 것 같다. 어쩌면... 내 이면의 음흉한 성격이 드러난걸까 ( ͡° ͜ʖ ͡°)

1층

나와 코헤이, 에어셀-A_37mmp, 에어셀-B_37mmp, 2011.

여기서 vector field가 보이는 나는...🤦🏻‍♂️

Vector field.

지하 1층

볼프강 라이프, 장소도 시간도 실체도 없는, 2003.

전시관 구석의 길다란 입구로 들어가면 온통 밀랍으로 칠해진 양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을 맞이한다. 공간에는 한번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있으며 위에는 어두운 백열등 하나만이 매달려있다. 어두운 동굴에 나 홀로 들어와있는 듯한 느낌도 좋지만 무엇보다 강렬한 것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자연 밀랍의 향이다. 평소에 그런 농도로 맡을 일이 없는 향임에도 거부감보다는 행복감을 준다. 마치 찰리의 초콜릿 공장 안에서처럼 식食이 완전히 해결된 상태에 대한 본능적인 만족감 때문이 아닐까?

살바도르 달리, 우주코끼리, 1980.

초현실주의의 거장으로 이름 모르면 바보일 정도인 살바도르 달리. 개인적으로 초현실주의 그림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달리보다는 오히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다. <우주코끼리>를 마주하면서도 작품에 완전히 빠져들지는 못하고 오히려 이렇게 유명한 사람의 작품이 바로 내 앞에 있다는 데에 더 큰 비현실감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작품에 친숙감이 느껴졌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얼마 전에 <널 위한 문화예술>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그에 대한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연필의 역사에 대한 영상도 그랬고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면서 교양도 쌓을 수 있는 좋은 채널이다.

올라퍼 엘리아슨,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여정, 2016.

한쪽 벽 전체에 갖가지 색깔과 크기의 유리 구들이 흩뿌려진채 빛난다. 구들의 일부는 뒷면이 거울로 되어있어 내 모습이 작게 비친다. 이 작품은 그냥 그 자체로 너무 예쁘다. 이건 나도 사진을 찍어봤는데 첨부한 사진이 내 것보다 훨씬 잘 나왔음에도 실제가 더 예쁘다.

이형구, 카니스 라트란스 아니마투스, 2005.

미술품들은 대개 작가가 그것을 만들어간 과정을 상상해보면 더욱 가치있게 느낄 수 있다. 언뜻 보면 실존하는 동물의 화석 같은 이 뼈대가 사실은 한 만화영화 캐릭터의 것임을 알게 되면, 실제와 같은 착각을 주기 위해 동물의 해부와 재료의 물성 탐구에 작가가 들였을 노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뼈밖에 없는데도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것 같은 익살스러운 자세도 매력적이다.

작품의 모태가 된 루니툰스의 코요테 캐릭터 "Wile E. Coyote".

최우람, 쿠스토스 카붐, 2011.

윗 작품과 비슷한 느낌으로 상상의 동물이 뼈대만 남아있다. 재질부터가 쇠라서 이전처럼 진짜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안에 모터가 내장되어있어 뼈대에 생동감을 불어넣어준다. 갈비뼈는 동물이 숨을 쉬듯이 물결치며 팽창-수축하고, 몸으로부터 뻗어나온 풀들은 바람에 흔들리듯이 움직인다.

이미지 출처


#미술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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