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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27.2.7
입력 2026.06.12. 22:38 · 수정 2026.06.13. 15:30 · 라이선스
라이선스


저녁에 세종에 볼일이 있어 잠깐 들르고 왔다. 맨날 책상 앞에 앉아 학위논문 마무리 작업에 치이던 중 오랜만에 떠난 나들이라 정신이 환기되었는지, 오가는 차 안에서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라 적어본다.

제목은 내가 태어난 지 오늘로 27년 2개월 7일이 되었다는 뜻이다. 의도한 게 아닌데 숫자도 참 예쁘다. 생각을 꼭 오늘 중에 글로 옮기라는 뜻인가 보다.

내 인생의 이 시점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적어 보고자 한다. 이전에도 이미 나이를 먹어가며 새롭게 느낀 점들을 글로 적은 바 있다. 그것은 내 입장, 즉 내가 얼마나 부딪히고 읽고 생각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다루었다. 하지만 본 글은 좀 다르다. 오늘은 내가 포착한, 내 또래가 지나고 있는, 지금 이 시기에 이 세대의 컨센서스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개개인의 편차를 서로 상쇄한 "대푯값"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내 나이 자체가 아주 적절한 제목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간간이 이렇게 인생 버전 업데이트 이력을 쓰는 것도 재밌겠다.

세대의 컨센서스라고 했지만 나의 관측가능한 우주는 몹시 작으므로 실제 ground-truth와는 아주 다를 수 있음을 미리 일러둔다. 어쩌면 이 글이 내가 경험하는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를 보여주는 방증이 될 수도 있다.

v27.2.7 업데이트

  • 많은 또래가 스스로 가구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가족과 활동하는 지역이 같고, 분가하기에는 도시의 혹독한 집값으로 그 비용이 터무니없이 높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가끔 서로의 집에 놀러 가기도 한다. 이제 마감 시간이 늦는 카페/술집을 찾으며 전전긍긍할 일이 많이 줄었다. 몇은 차가 있거나 그렇지 않아도 가끔은 택시를 탈 재력이 있어, 막차 시간에 대한 고민도 덜었다.

    결혼한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래도 여자가 남자보다는 빨라서 슬슬 사례가 보이는데, 그마저도 많지 않다. 그러나 머지않아 (= 앞으로 1-2년 안에도) 크게 증가할 듯싶다. 얼마 전에 만난 나보다 불과 몇 살 많은 사람이, 주변 친구 중 절반은 결혼한 것 같다고 말해 사실 좀 놀랐다. 여자도 아닌 남자였는데. 아무리 결혼 연령이 늦어졌다고 해도 파도는 오는구나. 결혼이 그러하니 출산과 육아의 파도도 곧 뒤따라올 것이다. 맏이가 아니라면 그 파도에 이미 탑승한 손윗 형제를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조용한 장소를 선호하는 나로서 친구들과 집에 모여 늦저녁까지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내 인생 중 독립성의 최정점에 서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나 포함) 결혼할 생각이 있다면 이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길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독립을 가능케 하는 재력 수준은 갖추었지만 동시에 아직 산하의 가족은 없어 찾아오는 잠깐의 황금기일 뿐이다. 가정을 꾸리려면 자신의 세계가 배우자와 자식의 그것과 병합되며 수반하는, 그 황금기를 반납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

  • 개인별 적성의 차이는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초까지만 해도 '이 친구는 여기에 두각을 나타내는구나.', 정도의 생각이 들게 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위에 어느새 무시할 수 없는 시간과 노력이 쌓여, 이제는 각자가 활동하는 분야에 따라 아예 다른 종species으로 분화해 버렸다. 그만큼 삶의 양상이 달라졌고, 다른 종의 사람과 교류하려면 특별한 노력을 들여야 한다.

    예체능 분야에서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커리어 상으로 시작보다 끝에 가까운 경우도 꽤 많다. 많은 이들의 전성기가 시작되거나 이미 진행 중이고 바둑 기사나 프로게이머와 같은 특정 분야들은 이미 전성기를 지났다.

    나와 내 주변 많은 경우를 포함한 학계, 전문직종, 창업씬 등에 속한 사람들의 번영은 예체능 사람들의 그것보다 늦다. 그중 확정적인 성공을 거둔 이들은 아직 내 주변에는 없다시피 하며 일반 사회로 눈을 돌려도 그 수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러나 앞으로 그럴 확률이 높은 이들은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내 안목이 얼마나 쓸만했는지 5년, 10년 뒤에 따져볼 일이 아주 기대된다.

    재계, 정계 사람들의 시기는 앞선 항목의 그것보다도 늦어, 일반 사회에서도 입문한 또래조차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 삶의 막바지도 이제 막연히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부모는 이미 은퇴를 했거나 곧 앞두고 있고, 우리는 이제 그들에게 보살핌을 받기보다는 주어야 한다는 것이 하루하루 더 명확해진다. 막 세상을 떠났다는 유명인들의 이름 중 많은 수가 이미 알던 이름이다.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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