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그간 내가 올렸던 것 중 가장 변태스러운 글이 될 것 같다.
내가 내 버킷리스트에 오랫동안 담아두고 있었던 것 중에 '완전한 어둠 속에 있어보는 것'이 있었다. KAIST 기숙사 방에서든 내 집 내 방에서든,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노라면 항상 어딘가에서 오는 빛이 있었다. 불을 끈 직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도, 방문 틈새로, 암막커튼 사이로 혹은 노트북 충전기 LED에서든 어디서든 오는 그 소량의 빛 때문에 눈이 암순응을 하고 결국에는 방에 물건들이 보였다. 물론 그런다고 잠을 못 잘만큼 예민하진 않지만 이럴 때마다 암순응을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있는 느낌은 무엇일까하고 궁금해지곤 했다. 창문 없는 화장실에서 문을 닫고 있어보면 해결되는 일이긴 한데, 화장실에 혼자 앉아서 주변 물건이 보이는지 한참 기다리는 건 별로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쓰면 쓸수록 더 변태같네.
어쨌거나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SUPAERO 기숙사 방에 블라인드를 내리면 빛을 완벽히 차단한다는 걸 발견했다. 손잡이를 돌리면 셔터처럼 내려오는 식이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위도가 한국보다 높은 지역이라 여름이 되면 낮이 너무 길어서 이런게 필요했던게 아닐까 싶다(근거 없음). 복도 불빛도 꺼진 밤에 블라인드를 내리고 멀티탭과 전자레인지 코드까지 뽑아버리면, 각종 LED는 물론 가로등 불빛도 들어오지 못해서 정말 말 그대로 칠흑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책상과 매트리스를 더듬거리며 어떻게든 침대에 누우면 몇 분이 지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눈을 멍하니 뜨고 있으면 마치 내 시야가 텅 빈 공간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청각과 촉각은 잃어버린 시각을 어떻게든 메꾸려고 훨씬 예민해지는데, 밤에는 이렇다 할 소리를 낼 사람도 없으니 느껴지는 건 오직 촉각밖에 없다. 시야와 함께 지능도 빨려들어가는 듯해서 온갖 잡념이나 시간의 흐름도 느껴지지 않는다. 자주 이러고 있으면 딱 미치기 좋을 것 같은데, 가끔씩 해보기에는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프랑스 교환학생기 Ep3
원본: 2020년 5월 18일 인스타그램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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