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로    메인
English    ☾

초콜릿은 사드세요... 제발
입력 2022.03.15. 11:38 · 수정 2025.12.31. 13:13 · 라이선스
라이선스


화이트데이에 초콜릿을 만들게 된 경위에 대하여

제가 먹으려고 만들긴 했는데요. 먹어보고 싶으면 저희집 놀러오세요. 제가 다 먹었다간 종강 때까지 잠 못 잘 것 같아요


⋮


사건의 발단은 카카오닙스였습니다. 맛이 궁금해서 한번 사봤는데 초콜릿과 비슷한 맛은 개뿔 쓰기만 더럽게 써서 찬장에 애물단지로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얘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 초콜릿을 만들자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어요.

원래는 생크림을 따로 사거나 아님 우유만 넣어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가에 있는 자동 거품기가 문득 떠오르면서 생크림도 직접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몹쓸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집에 올라간 저번 주말 거품기를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초콜릿을 향한 저의 여정은 아래의 재료로부터 시작합니다.

재료: 생크림(을 만들기 위한 버터, 우유, 달걀, 설탕), 버터, 카카오닙스, 설탕, 해바라기씨(얘도 재고떨이), 전동 거품기 & 핸드블렌더 겸용

1학년 때 여행가서 사온 킹시국 보드카가 뒤에 보입니다

먼저 생크림을 만들어보아요.

계란 노른자를 분리해줍니다. 남은 흰자는 나중에 뭐 끓일 때 옆에 얌전히 부어놓으면 맛있는 수란이 됩니다.

우유를 붓고 버터를 넣어 슬슬 가열해 녹인 냄비에 달걀 노른자를 잘 풀어줍니다.

어라... 색이 조금 노래보입니다. 노른자를 넣기 전에 냄비를 더 식혔어야 했는데... 노른자가 풀어지다가 다 익어버린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합니다.

돌이킬 수 없으니 그냥 식히고 냉장고에서 밤새 숙성시켜줍니다.

숙성된 혼합물에 설탕을 넣어가며 거품기로 저어주세요. 인터넷에서는 10분만 저으면 됐다는데, 저는 30분을 저어도 일부만 뭉쳤습니다. 우유를 너무 많이 넣었거나, 노른자가 익었기 때문이거나...

그래도 어느 정도 뭉친 것 같으니 이제 카카오닙스를 절구로 빻아줍니다. 절구와 그릇은 다이소에서 세트로 5000원에 팔아요.


⋮


빻던 걸 중단하고 잠시 저녁 약속을 갔다왔습니다. 냉장고에서 재료를 다시 꺼내어 차려두고 멀리서 바라보니 문득 드는 생각: 이게 뭐하는 거지?
낮에도 카카오닙스를 적어도 30분은 빻았는데 체를 걸러 나온 고운 카카오가루는 10ml도 되지 않았습니다.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지고 기계의 힘을 빌리기로 합니다.

전동 블렌더로 가니 금방 카카오닙스가 가루가 됐습니다. 절구로 빻은 것만큼 곱진 않지만 그래도 쓸만해보입니다. 고운 가루는 쟁여놓았다가 나중에 초콜릿바 위에 마무리로 뿌려주기로 합니다.
생크림(?)도 냉각시키니 그래도 나름 모양이 잡혔습니다.

생크림과 카카오닙스 가루, 설탕을 한데 붓고 중탕해가며 섞어주세요. 섞은 전체 반죽을 블렌더로 또 갈고 다시 섞고를 몇 번 반복합니다.

이제 반죽을 넣어 얼릴 틀을 준비합니다. 저는 얼음 틀에다가 초콜릿이 나중에 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식용유를 조금 발랐습니다.

3분의 1은 그냥 생 초콜릿바, 다른 3분의 1은 해바라기씨와 섞인 초콜릿바, 나머지는 해바라기씨가 토핑된 초콜릿바를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틀에 반죽을 조심스럽게 채워주세요.
양이 생각보다 많아서 또 다른 위쪽 틀에도 더 채워주었습니다. 그런데 위쪽은 미래가 눈앞에 보이는듯하군요...

이제 냉장고에서 밤새 냉동시키고, 틀에서 꺼내어줍니다.








⋮















⋮








ㅋㅋㅋㅋㅋㅋㅋ
망했습니다. 일단 반죽이 너무 꾸덕해서 틀 벽에 잘 밀착하지 못했고, 초콜릿바의 바닥이 될 반죽 윗면도 울퉁불퉁한 그대로 굳었습니다. 벽면에 식용유를 바르고 아래 따뜻한 물을 적셔도 잘 빠져나오지 않아서 결국 젓가락으로 빼내다 모양도 많이 상했고요. 얼음 틀은 절구로 두드리다가 깨졌습니다. ㅎ... 다음에는 그냥 비닐봉지에 반죽채로 얹어서 굳히고 칼로 자르는 편이 낫겠습니다. 다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아까 윗 틀은 글을 쓰는 지금 꺼낼 엄두도 못냈습니다.

접시에 예쁘게 올리고 카카오 가루를 뿌려봤는데도 이미 통제불능입니다.
버터 넣고 설탕 넣었으니까 맛은 괜찮긴 한데... 음... 음식 모습은 전혀 상관 없고 맛만 보는 사람들만 먹으러 오세요.


초콜릿은... 제발 사드세요.


#요리 


제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새 글이 올라왔을 때 이메일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글: 까다로운 주체

이전글: 메타버스


목록으로

© 2026 이건희